친애하는 20세기
김재훈 지음 / 336쪽 / 22,000원 / 휴머니스트
지난달 책방에서 ‘왜 이 시대에 조지 오웰을 읽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오웰의 작품은 20세기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유럽의 제국주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경제공황과 이념 갈등 등이 일어난 20세기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시대였다. 역사학자 이언 커쇼의 “죽다 다시 살아난 유럽”이란 표현처럼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기술과 과학의 혁신이 일어났으며, 대중문화가 탄생하고 예술의 대변혁이 일어났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다시 살아남은 20세기가 남긴 유산에 빚지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친애하는 20세기』는 저자의 인문학적 지식과 탁월한 시선을 통해 20세기 탄생의 순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탄생의 순간으로 나누어 걸작들의 탄생을 보여준다. 각 시기에 탄생한 많은 작품 가운데 유독 시대의 메시지를 지닌 걸작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의 등장 이후, 시각 이미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애썼던 20세기에는 이야기들을 한 장의 이미지에 함축하여 전한다. 노란색 띠로 눈을 사로잡는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일상의 하이라이트를 들려주는 『라이프』의 등장으로 ‘포토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열린다. 전쟁의 폭격 장면 대신에 「아프간 소녀」의 표정과 시선으로 참혹한 전쟁의 얼굴을 보여주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의 기쁨을 뉴욕 타임스퀘어 앞에서 포착한 「수병의 키스」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한다. 간디의 어떤 말보다도 ‘물레를 감는’ 사진 한 장이 주는 힘이 훨씬 큰 것이다. 한 장의 함축된 사진으로 현실과 현장을 강렬하게 전달하며, 그 기록들은 우리에게 눈으로 보는 역사가 되었다.
실용성과 대중성은 20세기 예술과 산업에서도 두드러진다. 예술과 기술을 접목한 산업디자인의 메카 ‘바우하우스’가 대표적이다. 그 당시에 쓰이던 커리큘럼은 오늘날의 미술대학에서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타이프페이스’의 변화도 흥미롭다. 화려하게 꼬리가 달려있던 서체에서 현대적인 서체로 바뀌는 과정에서의 핵심은 20세기 디자이너들이 가졌던 사명감이다. ‘평등한 인간은 모두 평균적인 문화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민주적이고 현대적인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페이퍼백의 혁명’은 더욱 반가운 이야기이다. 펭귄북스는 화려하고 비싸기만 했던 책들을 가볍고 저렴하게 만든다. 도서 시장과 독서를 대중으로 확대한 것이다.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는 감사한 혁명이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해체와 혁신을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된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사물을 확대하여 만든 ‘러버 덕’이 등장하고,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마릴린 먼로」처럼 대량생산과 반복으로 ‘가치의 전복’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킨다. 자본주의에 빠진 팝아트라 조롱당했지만 사실은 일상의 소재 혹은 진지하게 취급받지 못했던 물건들을 주목하여 예술로 승화했다. 친숙한 소재로 만들어진 팝아트는 예술계의 뜨거운 감자였을지 몰라도 적어도 대중에게 가까워지려 했던 시도임은 분명하다. 지금도 예술에 쉽게 다가가길 원하는 대중들에게 팝아트는 입문서이기도 하다.
저자가 보여주는 20세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저자의 글과 그림은 21세기의 나에게 그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한다. 20세기에서 팝아트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깨고자 했던 것은 틀이었다. 고정관념과 묵은 관습의 틀로부터 탈출을 꿈꾸며 19세기의 계급사회와 엘리트 문화를 무너뜨리고 대중문화를 탄생시켰다. 인권도 신장했다. 여성들과 소수자들이 거리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21세기의 인권운동은 20세기로부터 전해져 온 힘을 그대로 받고 있다. 그들이 싸워온 그 길이 헛되지 않게 오늘도 우리는 그 뜻을 이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과거는 잊혀가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오는 것이기에 지금도 우리는 20세기의 문학, 역사, 문화, 예술을 읽고 보고 배운다.
이제는 이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더 위대한 유산의 가치로 물려줘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책은 저자가 20세기에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지 생각해보며 메시지를 받은 나는 오늘 회신을 보낸다. 친애하는 20세기여, 감사합니다.
이보현_책방노랑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