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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위로 흐르는 불안과 미완의 온기

by 행복한독서

빨간 호리병박

차오원쉬엔 글 / 김세현 그림 / 전수정 옮김 / 60쪽 / 16,000원 / 사계절



큰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듯 뉴뉴와 완의 집이 마주 서있다. 완의 아버지는 거짓말쟁이로 소문나 있다. 이미 집을 떠난 지 오래였지만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계속되었다. 완은 엄마와 단둘이 그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강은 외로운 완을 품는다. 완은 강에서만큼은 자유롭다. 생명을 지탱해주는 빨간 호리병박도 함께다. 강 건너 뉴뉴는 그런 완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찌듯이 더운 여름, 둘은 어느새 빨간 호리병박을 주고받으며 강을 자유로이 누비게 된다. 뉴뉴의 수영 실력은 점점 늘어갔다. 뉴뉴와 완의 마음도 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발이 닿지 않는 강 한가운데를 호리병박 없이 헤엄쳐 건널 수 있어야 진실로 자유로워질 것이라 판단한 완의 배려가 모든 것을 무용하게 만들어버린다. 뉴뉴도 마을 사람들도 완이 사기꾼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완은 질타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고 뉴뉴도 떠난다.


그것은 완의 잘못이 아니다. 새로운 관계는 어쩌면 매우 조심스럽고 위험할 수 있다. 강에서 보낸 시간은 충분한 믿음을 갖기엔 부족했을 수도 있다. 엄마의 경고가 뉴뉴 마음에 늘 자리 잡고 있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모두가 떠나고 홀로 강가에 남은 완은 온몸으로 울고 있었다. 완의 진심도 강가에 남겨졌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뉴뉴가 뒤늦게 완의 진심을 헤아려 달려왔지만 완은 이미 떠난 뒤였다. 처음엔 구명이었고 사랑이었으나 결국 완의 절망이 된 빨간 호리병박만이 강가에 떠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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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생 차오원쉬엔의 십 대는 1966년에 시작된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지나왔다. 완의 아버지는 어쩌면 혁명기 숙청 대상이었던 지식인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차오원쉬엔의 서정은 강과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출발하지만 중국 현대사의 단면을 슬쩍 보여준다. 문화대혁명 속에 서툴고 무자비했으며 당대 혁명적 임무 수행에 도취했던 홍위병의 흔적도 품고 있다. 자국의 역사적 격변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십 대 청소년의 불안과 미완의 심리 안에 담아낸 그의 작품들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이 주목한 건 당연하다.


차오원쉬엔은 이 그림책을 위해 글을 고쳐 썼다. 전문은 단편집 『바다소』에 실려있다. 동양화를 전공한 중견 화가 김세현의 장점도 극대화되었다. 그의 먹은 완을 질타하는 사방의 벽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고 수묵의 농담만으로도 차갑고 따뜻한 감성을 보여준다. 외롭다가 포근하기도 했다가 때로 냉정해지는 강물의 인상도 강하게 전해진다. 책 전체를 흐르는 강의 무게가 오롯이 느껴지는데 그 때문에 보는 내내 가슴이 묵직하고 뻐근하다. 두 작가를 엮은 달·리크리에이티브의 디렉션과 디자인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도 주목하자.


김혜진_그림책독립연구자, 『학교도서관저널』 그림책 신간 선정위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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