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
김현성 지음 / 460쪽 / 17,000원 / 웅진지식하우스
대한민국 정치는 역사적으로 결정적 약점을 하나 갖고 있었다. 일단 선거에서 승리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임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독재정권 시절에는 선거제도를 권력자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었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선거 승리가 정치의 모든 것처럼 생각되었다. 한마디로 한국 정치는 선거에서 시작해서 선거로 끝나는 ‘선거 지상주의’와 ‘승자독식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 『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를 읽을 때는 좀 식상한 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도 현대사는 선거와 그를 통한 정권 교체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또 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정신이 번쩍 든 시점이 있었다. 1987년 대선과 민주화 시대의 개막을 읽었을 때, 아직도 책이 반 이상 남아 있었던 것이다. 보통 현대사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에필로그로 넘어가야 하는데! ‘아, 우리가 민주화된 지 벌써 35년이 지났고, 선거의 역사 중 절반은 민주화 이후구나’, 묵직하게 다가오는 1987년 이후 35년 동안의 선거의 역사를 읽으며 절실하게 깨달았다.
선거 공학에 대한 책과 이론은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아주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네거티브 선거’라는 말은 1980년대 미국 공화당이 불리한 대통령 선거를 역전시키면서 나온 유명한 선거 전술이다. 또 ‘프레임론’이라는 말도 있다. 2000년대 미국 대선 전략으로 특정한 이미지나 개념을 유권자에 각인시키는 선거 전술이다. ‘티파티운동’이라는 말도 있는데 지역의 소규모 모임을 파고드는 전술로 ‘풀뿌리민주주의 전술’이라고도 불린다.
평등을 내세운 사회주의가 독재로 무너진 결정적 이유도 바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민주주의=선거’라는 공식은 오랫동안 독재정권 시절을 거친 한국에서 특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다. 20세기 세계사에서는 수많은 선거가 독재정권을 탄생시키고 스스로 선거제도를 폐지시킨 사례를 보여준다. 독일의 히틀러가, 일본의 군국주의 정권이, 남미의 많은 1950~60년대 독재정권이 그렇게 탄생하고 이후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에 결코 안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를 통해 보는 한국 현대 정치사는 시사적이다. 책의 내용 몇 가지를 들어보자. 먼저 박정희 독재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투표로 통과된 헌법을 통해 이루어졌다. ‘절차’는 지켰지만 민주주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또 부정선거의 형태도 계속 바뀌고 진화했다. 이승만 정권은 폭력, 개표 조작 등으로, 박정희 정권은 금권, 관권 선거 등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언론의 편파성이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민주화 이후에는 컴퓨터 조작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부정선거 혹은 그 의혹도 시대의 정치 문화나 기술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규모집회와 시위가 선거와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승만 정권은 3·15부정선거에 이은 4·19혁명으로 무너졌고 박정희 정권은 1978년 대선 직후 부마민주화운동과 10·26사태로 무너졌으며, 전두환 정부는 대선을 반년 앞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무너졌다. 2002년 노무현 정권 탄생에는 2002년 말 미군 장갑차 사건으로 인한 촛불집회가, 2004년 총선에는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집회가, 2017년 대선에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영향을 끼쳤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당선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이 정치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꽃핀다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선거를 통한 정치사는 궁극적으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표학렬_『한 컷 한국 현대사』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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