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
홍지혜 지음 / 348쪽 / 22,000원 / 혜화1117
드라마, 영화, 가수 BTS의 활약으로 오늘날 한국 문화는 이른바 ‘K-컬처’로 불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10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현상이다. 개항 무렵 조선은 단지 ‘지정학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미미한 존재였다. ‘은자의 나라’를 찾은 이방인들은 제각각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조선을 보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모습은 더럽고 비위생적이었으며 하얀 옷에 독특한 모자를 쓴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다닥다닥 모인 초가집은 버섯밭 같았고 온돌은 뜨거워 사람이 빵처럼 구워지는 것 같고, 가구는 찾아보기 힘든 나라였다. 비록 일부의 견해였다 해도 조선은 그들이 볼 때 원시적이고 미개한 이미지였고 문명의 나라와는 거리가 먼 결핍 덩어리였다.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는 19세기 조선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세밀하게 톺은 책이다. 이야기는 그들이 모은 수집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자의 표현대로 서양인들의 수집 활동은 곧 아카이빙의 일환이다. 그들의 수집품을 책 속에서 하나하나 만나보노라면 마치 보물섬에서 발견한 상자 위의 먼지를 쓸어내고 뚜껑을 열어 그 속에 담긴 보물을 하나하나 꺼내 보는 기분이 든다. 여기에는 조선산 호랑이 가죽, 1910년 영국에서 열린 일영박람회 포스터, 고려청자, 조선백자, 그리고 달항아리가 들어있다. 이것들은 조선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한 상징적인 사물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것들의 수집 과정을 따라가면서 조선의 이미지를 형성한 비밀의 베일을 차례차례 벗겨낸다. 고려청자를 향한 일본인들의 수집 열풍과 영국 컬렉터들의 수집 취향에 영향을 준 수집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유행’이나 특정 ‘취향’이라는 피상적인 현상 뒤에 숨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때의 조선을 상징하는 굵직한 아이템들이 어떻게 외국인들을 매료시켰는지 역사적인 사실을 아카이빙하면서 풀어낸 점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첫 번째로 다루는 수집품인 호랑이 가죽은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던 물품으로 호랑이는 그들에게 조선의 이국적인 면모를 상징했다. 반면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대대로 민족정신을 대변하고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호랑이가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제국주의의 울타리 속에서 ‘정복과 전시의 대상’이 되었다. 식민지에서 호랑이 사냥을 즐기는 제국주의자들을 피해 쫓기는 호랑이의 모습에 저자는 조선의 모습이 겹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호랑이 가죽에 이어 조선의 이미지 형성에 큰 역할을 한 것이 도자기였다. 외국인들은 일본과 중국 도자기 틈바구니에서 한국 도자기는 거칠고 투박한 것으로 인식했다. 조선에서 산 건 무조건 조선 도자기라고 생각해 값싼 왜사기가 가짜 ‘코리아’ 도자기로 둔갑한 일은 한국 도자기에 대한 초창기 인식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조선 도자기 수집 아이템은 고려청자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무덤에서 파헤친 고려청자 수집에 열을 올렸다. 유럽에서는 중국풍 미술품 수집 유행이 확산하면서 중국 황제들이 쓰던 고급 물건들과 그 취향이 유사한 고려청자로 관심이 이행한다. 이에 저자는 스티븐 부셸 박사와 같은 컬렉터나 다도 문화의 유행과 같이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고려청자 시장이 형성되었음을 살핀다.
이 책에서는 조선 이미지 형성에 단지 물건 수집뿐만 아니라 수집이라는 행위가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제도인 박람회와 박물관에도 주목한다. 영국과 같은 모범 제국이 되고 싶었던 일본은 영국에서 일영박람회를 열었다. 여기에 동양을 대표하면서도 동양에 속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전략으로 세운 ‘코리아’관은 그들의 식민지 개척 업적을 십분 홍보했다. 일본은 박람회나 박물관이라는 장에서 조선시대 미술을 배제하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공예품으로 한국 미술사를 정립했다. 조선에 설립한 이왕가박물관 역시 같은 맥락의 수장품을 보여준다. 이는 퇴락한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교묘한 전략이었다.
책에 실린 박람회와 관련된 다양한 도판은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조선을 실제로 여행한 수집가들이 무엇을 샀는지 마치 그들의 쇼핑 장바구니를 보는 것과 같이 재미있다. 이들이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를 비롯한 각종 공예품을 어디에서 샀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카바노프 상점, 테일러 상회, 서양인을 상대로 한 한국인 딜러 신송에 이르기까지 당시 외국인들의 구매 방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저자는 그물을 짜듯 촘촘히 엮었다. 이어서 고공 행진하던 고려청자의 열기 대신 청화백자가 어떻게 새로이 수집 대상으로 부상했는지 소상히 밝힌다. 저자는 민예운동을 주도한 야나기 무네요시를 소환함은 물론이고 조선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들, 영국의 스튜디오 포터리와 같은 시대적 배경 아래 다층적인 문화적 프레임 속에서 그 변화의 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엮어낸다.
그 정점에 있는 달항아리 한 점은 그야말로 ‘아이콘’이다. 화가 김환기가 특히 좋아해 이름 붙인 달항아리는 한국의 아름다움과 정신을 형상화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버나드 리치가 산 달항아리가 루시 리의 스튜디오에 등장하기까지, 나아가 달항아리의 존재를 알린 스노든 경의 사진 이야기를 풀면서 독자를 하나의 신화 속으로 이끈다.
서두에서 저자는 영국 유학 당시 영국인들의 “생활 밀착형 아카이빙”이 부러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가 이미 체화한 아카이빙 습관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한마디로 구성이 세밀하고 달항아리처럼 둥글어서 역사의 한 면을 휘영청 밝히는 책이다.
최지혜_미술사학자,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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