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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를 사유하는 새로운 게임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by 행복한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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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릭스

오세나 글·그림 / 72쪽 / 25,000원 / 향출판사



어릴 적 제가 살던 지리산은 울타리 없는 놀이동산이었어요. 시간마다 계절마다 풍성한 자연이 만든 놀잇감들로 지루할 틈 없는 시절이었지요. 그 자연 속에서 놀면서 관찰하고 형상화하고 감정이입을 하곤 했습니다. 자연은 선생님이자 친구였기에 유치원이나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외롭지 않았어요. 그렇게 어린 시절을 자연과 함께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자연 안에 패턴이 보였어요. 이것과 저것이 닮아있고 전혀 다른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곳곳에서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생명에는 다양성과 변화가 있으면서도 법칙과 규칙적인 리듬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생명체들이 공존하던 어릴 적 지구는 건강했어요.

요즘 겨울이면 등장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등으로 무참히 떼죽음을 당하는 생명들을 뉴스로 접하게 됩니다. 차마 그 생명들을 마주할 수 없어 채널을 돌리지만 어릴 적 보지 못한 이런 현상은 왜 생기는 걸까 괴로운 마음이 들었어요.

언젠가부터 빠르게 인간의 필요에 의해 유전자를 조작하고 생명들을 획일화시켜 재배하고 키우면서 식물과 동물, 지구는 병들어가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뉴스들은 『테트릭스』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테트리스’라는 게임을 아시나요?

위에서 아래로 모양이 다른 블록들이 떨어지고 게이머가 블록들을 맞추면 그 라인은 없어져요. 그렇게 계속 맞춰가며 블록이 쌓이지 않게 해야 하며 블록이 쌓여 제일 윗부분에 닿는 순간 게임 오버가 되는 게 룰이죠. 이 게임의 룰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전 이 게임을 보는데 어느 날 문득 제가 앞서 이야기한 지구의 룰과 닮았다고 느꼈어요.

다양한 블록들처럼 생명들이 서로 짜 맞춰져 저의 어릴 적 지구는 게임 오버가 되지 않고 지켜나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 지구에 똑같은 블록(유전자 조작)들이 마구마구 떨어지고 있어요. 멸종위기의 동식물이 생겨나고 생명들이 획일화되면서 생태계는 파괴되고 있어요. 지금 지구는 아파요. 이런 지구를 보고 저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테트릭스』를 만들게 되었어요.


이 책의 제목은 테트리스 게임과 영화 「매트릭스」 제목이 조합된 단어입니다. 「매트릭스」라는 영화는 가상의 공간에서 인간이 재배되고 있다는 설정. 어찌 보면 동식물뿐만이 아니고 인간도 재배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책의 구성은 게임 형식으로 제작되어 네 개의 레벨로 네 챕터 구조로 되어있는데 왼쪽 페이지에는 게임 레벨과 보너스 등을 설정하는 인터페이스 형식, 오른쪽 페이지는 게임의 화면을 연상하게 제작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글 없는 그림책이지만 많은 것을 설명하며 읽고 또는 읽어줄 수 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보일 거예요. 모든 것이 똑같아지고 또 가둬지고 재배되고 있다는 것을요. 처음 레벨에 등장하지 않던 보너스, 두 번째 레벨부터 등장하는 다이아몬드의 의미 등 제가 숨겨놓은 진실을 찾으셨다면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은 이 “게임을 계속하시겠습니까?”입니다. 만약 게임을 멈추겠다면 더 이상 책장을 넘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다섯 권의 그림책을 지었고 그중 『빙산』(지구 온난화), 『검정 토끼』(쓰레기 문제), 『테트릭스』(생명의 다양성)는 의도치 않게 환경 3부작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신작 『테트릭스』는 환경 그림책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환경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하는 작가입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보일 듯 말 듯한 애매모호한 이미지와 내용 또한 메타포 방식으로 여백이 읽힙니다. 곳곳의 색과 형태에도 장치와 복선이 있습니다. 작가가 심어놓은 미장센의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고, 한국적인 해학과 풍자가 제 그림책에 담겨있습니다.

환경문제에 대해 직접 표현하는 방식이 어느 부분에선 필요하기도 하지만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함을 주어 회피하게 하죠.

제가 은유라는 방식을 택한 건 독자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사유하며 그 공간 안에서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 해석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통찰력은 우리에게 닥친 환경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제 그림책이 어렵다는 분들도 있지만 어려운 게 아니고 ‘낯설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삶의 낯선 경험은 자양분이 되어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독자들에게 힘을 보탤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다시 『테트릭스』를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여러분 마음속 시선엔 무엇이 보이시나요?



오세나 작가는 『로봇친구』 『지우개』 『빙산』 『검정 토끼』 『테트릭스』를 쓰고 그렸으며 볼로냐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두 번 선정되었습니다. 신작 『테트릭스』는 2023 나미콩쿠르 그린아일랜드에 선정되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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