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주방
유재덕 지음 / 252쪽 / 14,000원 / 나무발전소
딸 바보, 식품공학 전공, 음식 만들기 그리고 마흔 넘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점까지 유재덕 셰프와 비슷한 점이 꽤 있다. 그중에서 음식 만들기는 공통점이면서도 장소나 목적에서 조금씩 달랐다. 나는 가공식품을 비롯하여 농축수산 신선 식품을 기획하거나 발굴하는 일을 한다. 음식을 만드는 이들에게 식재료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유재덕 셰프는 맛있는 식재료에 영감을 불어넣어 테이블 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저자가 좋은 도예가라면 나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찰흙을 찾는 사람이다.
나는 집에서 음식을 매일 만든다. 결혼할 때 약속이었다. 저자 또한 호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든다. 장소만 다를 뿐 음식을 만들 때 마음의 기본 바탕은 같다. 먹는 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존중을 모르는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사람을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책을 읽다가 문장 하나에 꽂히는 경우가 있다. 다른 내용은 눈을 스치는데, 머리와 마음을 동시에 스치는 문장 말이다. 앞서 인용한 문장이 딱 그런 예다. 더욱 신기한 건 『독서 주방』의 39가지 에피소드 중에서 26번째인 『먹는 인간』 편만 다른 글과 전개가 달랐다. 저자는 회상이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책을 소개했다. 올림픽의 긴장감이나 정치에 관한 이야기 등을 코스 요리의 맛난 전채 요리처럼 도입부로 사용했다. 전채 요리처럼 도입부가 그리했으니 메인 요리는 당연히 책 소개였다. 달콤한 디저트 대신 저자의 생각으로 에피소드를 멋지게 마무리했다. 『먹는 인간』 편은 코스의 틀을 깨고 일품요리 하나로 승부 걸듯 시작부터 책 소개를 한다. 어쩌면 그 부분이 저자의 철학이 가장 녹진하게 스며든 곳이 아닐까.
배려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존중이 빠진 음식은 저자의 말처럼 동물의 음식인 먹이가 될 뿐이다. 먹이를 조금 사람답게 바꾸면 ‘끼니’가 된다. 바삐 산다는 이유로 음식을 먹었음에도 끼니를 때웠다고 이야기한다. 만든 이를 존중하지 않은 처사다. 회사 앞 점심시간, 주말의 예식장 뷔페, 줄을 서는 집에서는 하루 식사 인원을 몇 명 쳐냈다고 한다. 먹는 이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맛을 즐기는 대신 자랑하기 위해 음식을 찾는다. 저자가 소개한 책은 39권이다. 어떤 책을 읽고 쓴 글이라도 요리사로서의 기본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때로는 대놓고, 어떤 때는 과거의 회상을 통해 요리 안에 담긴 존중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책은 잘 쓴 식당의 메뉴판 같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메뉴판은 식당의 음식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다. 짧은 소개 글과 사진만으로도 좋은 식당은 자신만의 철학을 잘 담아낸다. 『독서 주방』은 음식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딱 좋은 메뉴판 같은 안내서다. 익히 아는 메뉴판을 넘기듯 책장이 넘어간다. 우리는 저자의 책을 덮으며 결정한 메뉴를 주문하듯 자연스럽게 39권의 책 중 선택한 책을 주문한다. 30년 가까이 음식 관련 공부와 일을 하는 필자도 책을 덮고는 『먹는 인간』을 주문했다. 마음의 양식에서 따온 ‘파불루머’의 양식을 『독서 주방』으로 맛나게 먹었다. ‘존중’이 맛의 중심을 잡고 있을 유재덕 셰프가 만든 음식을 실제로 먹는 것이다. 나만의 별책 부록이다.
김진영_식품 MD, 『딸에게 차려주는 식탁』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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