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나눈 빵과 사람의 온기

by 행복한독서

월인정원, 밀밭의 식탁

이언화 지음 / 232쪽 / 18,000원 / 남해의봄날



귀촌 서사에는 어딘가 전형적인 구석이 있는 게 보통이다. 대도시에 살던 누군가가 실패를 겪고 꿈에 그리던 공간을 운명적으로 만나 그곳으로 옮겨 살며 ‘힐링’한다는 것이 하나의 표본이다. 여기에는 온갖 미디어에서 시골을 그렇게 그리는바, 유유자적한 시골의 삶을 꿈꾸는 도시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의도가 담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귀촌을 한 사람들은 사실 이러한 기대가 허상인 경우가 많으며 시골에서의 ‘삶’은 결코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언화의 책 『월인정원, 밀밭의 식탁』의 미덕 중 하나는 적어도 이러한 서사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우리밀’ 홈베이커가 되어가는 과정은 새로운 삶을 스스로 기획해냄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걸어 들어간 이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내디딘 걸음의 첫 단계는 스스로가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내는 일이다. 서울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면서도 그는 요가 지도사와 제빵 수업을 듣는다. 새로운 삶을 구상할 수 있는 기반이 이렇게 마련된다. 하지만 구상을 실행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따뜻한 이웃들과 가족, 좋아하는 일이 있는 일상의 터전을 옮기는 일이란 누구에게라도 그러할 것이다. 그를 움직인 것은 ‘어디에 살건 다를 것 없다. 그런데 어디든 같을 거라면 여기가 아니라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자신의 손으로 끼니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면 더는 숨 가쁜 삶을 살지 않아도 되리라는 결론을 얻은 그는 지리산 아래의 구례로 이주한다.


그를 ‘다른 곳이 아닌’ 구례로 이끈 건 우리밀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가 “밀밭에서 바로 수확한 밀로 세상에서 가장 신선한 빵을 구워 그 밀의 주인과 이웃에게 돌려드리”는 일이라는 믿음이 그를 구례로 향하게 한 것이다. 그의 빵은 근원과 생산의 과정을 소거하는 ‘대량 유통’의 절차를 거치고 매끈한 모양을 갖게 된 빵들과는 다르다. 투박한 듯 세련된 그의 빵에는 밀의 생산지와 생산자, 제분 방법 등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밀에 대한 그의 애정은 책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그는 각각의 밀에 따른 제빵성과 맛, 향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여러 해에 걸쳐 그 원인을 분석한다. 그 결과 정의한 ‘농가밀’이란 “하나의 농가에서 재배한 단일한 성질의 밀로 생산이력을 아는 밀”이다. 밀의 근거로서의 농지와 농부를 소중히 여기는 섬세함이 그의 제빵 철학에 담겨있다. 인접한 지역에서 생산된 밀이라도 혼합하여 제분하지 않음으로써 그 각각에 개성이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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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그의 빵에 풍요로움을 더한다. 부추꽃이나 민들레, 수박 껍질 같은 제철 재료가 빵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는 사실은, 자연 속에 온전히 품을 맡긴 이가 얻은 “자연 재료가 갖는 저마다의 독특한 힘 또는 정서”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면 알 수 없을 터이다. 봄꽃에는 대개 독성이 없어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민들레나 유채꽃, 냉이꽃 등을 맵시 있게 얹어낸 베이글은 소담한 느낌이다. 단 한 차례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한 수박 껍질은 한천과 함께 굳어 해사한 색의 젤리가 된다. 그 잎을 수확하느라 성급하게 꺾여, 산지가 아니라면 보기 힘든 부추꽃은 치아바타에 새침한 무늬를 새겨 넣는다. 풀과 꽃이 무심한 듯 툭툭 박힌 그의 빵들처럼, 이 책에는 구례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 정성스런 레시피들이 녹아들어 있다.


저자가 우리밀 빵을 만들며 얻은 깨달음 하나는 ‘나눔’이다. 겨우내 제 몸피를 불린 밀은 초여름에 수확되어 가루가 된다. 그것을 반죽하고 빵을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는 순환 속에서 그는 나눔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안도감과 평화를 느낀다. 그가 마을에서 운영해온 동아리를 비롯해 한 달에 한 번 그날의 빵과 마실 것을 나누는 빵 식탁 ‘빵긋’, 직접 만든 빵과 과자들, 빵과 관련된 도구와 소품 들을 사고파는 ‘빵장’ 등이 이러한 나눔의 정서를 공유한다. 여기에 참여한 이들은 잠시 시골을 찾은 도시 사람들뿐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던 ‘읍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 세탁소 옷 수선집, 오일장 건어물집, 과일집 엄니들’까지를 수렴한다. 빵긋과 빵장에서 전수된 것은 비단 빵과 사람의 온기만이 아닐 것이다. 이언화의 빵에는 스스로의 삶을 기획하고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끈 이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니까. 새로운 삶을 기획한 경험을 나누는 일은 밀이 빵이 되어 제 몸을 나누는 일과도 같았다. 이제 그는 말한다.

“바람이 간절하면 언제가 되더라도 그 때에 이룬다”고.


그 역시 작가로서 몇 권의 책을 펴낸 권산은 자신의 아내인 이언화를 ‘완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머릿속에 천 가지 생각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에는 차이가 크다. 완성의 과정에서 이언화는 늘 전력투구했고 스스로를 소진했다. 그래서 지금은 잠시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한다. 하지만 그의 책 『월인정원, 밀밭의 식탁』은 저자가 해온 나눔을 저만의 방식으로 지속한다. 마음의 부름에 따를 줄 아는 이 부부는 오늘도 농사를 짓듯 일상을 지으며 자기 나름의 행복의 방식을 배우고 있다. 스스로가 “맛있는 빵으로 구워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는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도 어쩌면 행복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준연_아이엔티스튜디오 대표, 『온다 씨의 강원도』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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