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요소로 전하는 재치, 존 클라센

깊이 보는 그림책작가의 세계

by 행복한독서

존 클라센은 캐나다에서 태어나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드림웍스에서 일하다 그림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어요. 그는 『내 모자 어디 갔을까?』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모자를 보았어』라는 모자 3부작과 최근 출간한 『세모』 『네모』와 『동그라미』(근간) 모양 3부작 등에서 간결하고 재치 있는 글과 그림을 통해 깊이 있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는 어린이책은 무엇보다도 단순해야 하고, 단순한 요소들로 긴장감을 쌓아 올려야 하며, 복잡하고 정교한 암시를 많이 넣어 독자 참여 공간을 늘려야 한다고 여겨요. 단순한 요소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과정은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에 빼어나게 묘사돼요.


글 : “커다란 물고기는 아마 오랫동안 잠에서 안 깰 거야.”

그림 : 하지만 큰 물고기는 눈을 댕그랗게 뜨며 잠에서 깬다.

이건 내 모자가아니야.jpg ⓒ시공주니어(『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이렇듯 글과 그림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켜요. 작은 물고기는 자신의 독백과 상반된 상황이 일어나는 걸 전혀 모르고 제 갈 길을 가지만, 모든 것을 훤히 보는 독자는

“작은 물고기야, 빨리 도망가!”

조마조마해 하며 이야기 자체에 참여하게 돼요. 상반된 글과 그림으로 고조된 긴장감은, 물풀들이 양쪽 페이지를 빽빽하게 메운 장면에서 극대화돼요. 참여하던 독자는 여태까지 무대 위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커튼이 내려져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자 공포감마저 느껴요.


작가는 영화와 TV에서 보는 공포 장면은 충격적이고 그것에 짓눌릴 수도 있지만, 책에서 느끼는 공포는 자신이 언제나 책장을 넘길 수 있음을 알기에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물풀 장면에서 독자가 아무리 긴장감과 공포감으로 쭈뼛한다 해도, 스스로 얼른 다음 장면으로 넘길 수 있지요. 모자를 쓰고 기분 좋게 홀로 나오는 큰 물고기를 보고 독자는 그 무언가를 짐작하게 돼요. 작가가 여기저기 숨겨놓은 암시들을 찾아보며 나름대로 해석하는 건 독자의 큰 즐거움이에요.


모자 3부작에서 물고기와 곰, 거북이는 모자를 열렬히 사랑하지요. 작가는 사실 그들이 모자를 쓸 실용적인 이유는 없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캐릭터는 모자를 사랑하게 된다고, 이것은 소유에 대한 일종의 사랑 이야기라고 말해요. 모자를 잃어버렸다가 되찾으며 응징까지 한 곰과 큰 물고기와는 달리(열린 결말이지만 암시를 보고 짐작할 수 있어요), 모자 하나를 사이에 둔 사막의 세모 거북이와 네모 거북이 이야기에는 ‘우리 함께’가 강조돼요. 지는 해도 ‘우리 함께’ 보고, 꿈속에서 ‘우리 둘 다’ 모자를 쓰고 있다는 전개로 소유에 대한 집착을 훌쩍 뛰어넘는 관계의 아름다움이 펼쳐지지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라는 모양 3부작은 표지부터 간결 그 자체에요. 제목조차 없이 모양만 인쇄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모양마다 감정을 풍부하게 담은 눈을 보면 ‘대체 이 책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는 각각의 특성이 있어요. 세모는 뾰족뾰족 생긴 대로 장난꾸러기이고, 네모는 네모난 덩어리처럼 무덤덤하고 어리숙하며, 동그라미는 발랄하면서도 생각이 깊어요.


세모.jpg ⓒ시공주니어(『세모』)


『세모』에서 세모가 네모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려고 네모네 집까지 가는 과정에서 작은 세모들을 지나 중간 크기 세모들과 커다란 세모들과 더 이상 세모가 아닌 모양들을 지나는 장면은, 마치 먹으로 그린 동양화를 보는 듯 신비롭고 아름다워요. 그것들이 ‘모양은 모양인데 이름 없는 것들’이라고 한 표현은 참 놀라워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갈 때 신비로운 통로가 꼭 있어야 하니, 그 모양들은 구태여 이름이 없어도 가치 있는 존재들이지요.


자신의 가치는 『네모』의 네모도 얼떨결에 증명해요. 네모는 네모난 돌덩어리를 쌓고 있다가 동그라미에게 조각가라는,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황송한 칭찬을 들어요. 동그라미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네모는 네모난 돌을 끝없이 쪼다가 결국 돌 부스러기만 남기고 지쳐서 잠이 들지요. 그런데 동그라미는 돌 부스러기가 둥글게 가장자리를 이룬 빗물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완벽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며 네모를 천재라고 칭찬해요.

네모.jpg ⓒ시공주니어(『네모』)


조각은 반드시 전형적인 모양이어야 할까요? 네모가 쪼던 돌은 부스러기로 바뀌었지만 그 부스러기들이 빗물을 가두고 완벽하게 동그라미를 비추었으니, 네모는 자신은 몰랐더라도 설치미술 작품을 만든 셈이지요. 대개 본인은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혁신인 것도 세계사에 많잖아요? 이렇게 전통과 혁신을 재치 있게 연결한 존 클라센의 이 그림책은 사랑, 그 자체예요. 동그라미는 『동그라미』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몇 달 후를 기대해봐요.


서남희_번역가,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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