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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담긴 마음의 밀도

출판인이 사랑하는 책방 - ‘한쪽가게’

by 행복한독서

‘정말 이 골목 어딘가에 책방이 있는 걸까?’ 몇 년 전 대전에 있는 ‘한쪽가게’를 처음 찾아가던 날 고개를 갸웃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도착지에 다다를수록 상점가와 멀어지고, 살림집이 옹기종기 모인 회색빛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과 집 사이에 정말 그곳이 존재했다. 문을 여는 순간 맑은 종소리가 딸랑 울리면서 노란 온기와 초록 식물로 채워진 책방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책방지기는 ‘내가 사는 집 가까이에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상업 지역이 아닌 거주 지역에 공간을 꾸렸다고 했다. 안온한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직감했다. 앞으로 나는 한쪽가게 둘레에 살아가는 이들을 내내 부러워할 거라고.

동네2-한쪽가게-내부.png ⓒ한쪽가게

열다섯 평인 이 공간의 정식 이름은 ‘즐거운 커피 & 한쪽가게’이다. 운영지기 부부가 대전으로 이주하기 전 운영했던 카페 이름으로 먼저 문을 열고 얼마 뒤 공간 ‘한쪽’에 책방을 마련했다. 바닥 시공, 페인트칠, 싱크대와 테이블과 책장 선반 제작까지 공간의 모든 것을 오롯이 부부의 손길로 채우고 다듬었다. 서두름 없이 원하는 모양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운영지기의 태도는 이런 공간 인테리어부터 지금의 책방 운영까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한 공간에서 책방과 카페의 기능을 두루 운용하고 있기에 한쪽가게의 서가는 크지 않다. 혹여 그 작은 규모에 실망해 돌아선 이가 있었을까? 그렇다면 책방지기가 선별한 책에 담은 마음의 밀도를 느끼지 못한 그가 안타깝다. 작은 공간의 한쪽은 더욱이 귀해서 허투루 채울 수 없다. 그래서 책방지기는 신간과 구간의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읽은 책, 꼭 소개하고 싶은 책만을 판매한다. 오프라인 공간에는 책 표지마다 단정한 손 글씨로 쓴 추천 메모를 붙여두고, 온라인에서는 한 달 동안 특별히 함께 읽고 싶은 세 권의 책을 밑줄 친 구절과 함께 성실히 알린다.

그 책들은 늘 책방지기의 지금 삶과 닿아있다. 여성, 시민, 지구인으로서 고민하는 바를 나눌 수 있는 책, 우리를 좋은 생각으로 끌어당겨 주는 책들이 많다. 책방지기가 몸이 아파서 한동안 책방을 닫았다가 다시 문을 열게 되었을 때는 아픈 몸과 돌봄에 관한 책을 찬찬히 소개했고 기후위기로 불안정한 날씨가 이어질 때는 생태 환경에 관한 책을 권한다. 나는 그의 책 소개를 통해 평소 놓치고 살아가는 감각을 깨닫고 모르던 세상을 배운다.


어느 매체에서 책방지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쪽가게에서 추천하는 책이 다른 책방에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파는 책에 저의 마음을 담았기에 다 똑같아 보여도 다 다른 책이에요.”

그런 마음에 감화되어 한쪽가게 ‘책 친구(책방지기는 책방에서 만나고 소통하는 이들을 이렇게 부른다)’들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책을 굳이 여기서 구매하고 그가 권하는 책으로 북클럽에 참여한다. 무엇보다 책방지기의 취향과 지향이 짙게 밴 행사는 ‘한쪽가게의 테이블’이다. 출판사의 제안이나 누군가의 요청과 무관하게 오직 책방지기를 달뜨게 한 책의 주인공을 초대한 뒤, 테이블에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열 명의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내가 SNS로만 들여다보았던 한쪽가게를 처음 방문한 날이 바로 이 행사에 초대된 날이었다.

동네2-한쪽가게-모임.png

테이블에 함께 앉은 이들에게 어떻게 열매하나 출판사를 시작했는지, 어떤 책을 만드는지, 왜 서울에서 전남 순천으로 이주했는지 등을 나눴다. 또 이와 같은 것들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들려줬다. 이런 이야길 들으며 시종일관 따뜻한 눈길로 호응해 주는 참가자들이 고마운 한편, 작가가 아닌 작은 출판사 대표를 만나러 온 연유가 궁금했다.

후기를 나누는 시간에 ‘책 친구’가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저는 사실 열매하나를 잘 몰랐어요. 그런데 책방지기가 좋은 책 내는 곳이라며 자꾸 권해서 읽다 보니 관심이 커졌어요. 역시 한쪽가게의 추천은 틀리지 않았어요.”

행사가 끝난 뒤 책방지기는 참가자들에게 빨간 ‘열매’로 장식한 작은 선물을 손에 쥐어주고, 내게는 참여자들이 남겨준 사랑스러운 후기와 더불어 그날을 기록한 사진과 영상을 정리해 보내주었다. 책방지기는 그렇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진심으로 나누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책을 만들며 어느 때보다 큰 응원을 받은 날이었다.


작지만 작지 않은 이 공간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른 책이 되는 것처럼 다채로운 일들이 더해진다. 어떤 날은 카페의 기능을 소거해 오로지 책만 읽는 고요한 공간이 되고, 어떤 날은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건강한 디저트와 식사를 판매한다. 계절마다 좋아하는 대전의 공간을 소개하는 작은 매거진을 발행하고 그곳을 함께 찾아가는 산책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대전에는 성심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역에도 이토록 매력적인 공간과 재미있는 일들이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이런 반짝이는 기획들 사이로 공간과 기회가 필요한 책 친구들에게 때때로 책방을 내어주는 배려도 눈에 띈다.


언제까지고 책에 기대어 살고 싶은 이가 정성으로 권하는 진심 때문에 이곳에는 멀고 가까운 책 친구들의 다정이 쌓인다.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이 삶의 뒷전으로 쉽게 밀려나는 각박한 때에 환대와 우정이 오가는 작은 동네책방들의 존재가 소중하다. 무엇보다 이런 마음의 공명을 나눌 수 있도록 공간을 돌보고 지키는 책방지기의 가없는 노력이 고맙다. 나는 한쪽가게가 있는 동네에 살지 않는다는 게 역시 자주 아쉽다. 하지만 그곳이 어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늘 든든하다.


위치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181번길 24-23

운영 시간 : 수~일 13시~19시(월·화 휴무)

연락처 : 042-535-0153


천소희_열매하나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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