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Sep 27. 2023

대멸종의 위기, 공생하고 싶은 인간에게

인간의 자리

박한선 지음 / 256쪽 / 16,800원 / 바다출판사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영장은 ‘오묘한 힘과 지혜를 가진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즉 모든 생물의 피라미드 꼭대기가 인간의 자리라는 뜻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만큼 서양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도 드물 것이다. 16세기 과학 혁명은 아리스토텔레스 깨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천 년간 서양을 지배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찰과 이론은 지금도 유효하므로 ‘아리스토텔레스 깨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도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영혼을 가졌다는 믿음, 그리고 이를 통해 자연계의 수장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믿음” 때문에 “인간은 사다리의 가장 꼭대기에서 천상을 넘보는 존재”라는 아리스토텔레스식 세계관 깨기에 동참한다.


저자는 인류학자이면서 정신과 의사이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천상이 아니라 동물의 왕국 어딘가에”서 인간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최고의 길잡이인 셈이다. 저자는 인간의 본질부터 사랑, 우애, 가족, 살인, 공격성과 서열, 유성생식과 동성애, 먹이 획득과 영양 섭취, 노화와 죽음, 혐오와 행동 면역까지 다룬다. 각 장은 인간행동생태학과 동물행동생태학을 비교하면서 전개된다. 성경, 우화, 소설, 고전, 최신 뉴스에서 접하는 동서고금을 망라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와 동물의 생태를 교차하면서 인간의 자리를 안내한다.


진화의 과정에서 동물은, 인간은 ‘왜 그랬을까?’에 대해 알아보면서 저자는 인간성의 본질을 밝히고 역으로 인간의 심리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결과값에 대해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은 밝혀지지 않은 알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탐구심이 오늘날의 문명을 일궜겠지만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의 이유는 또 모르지 않는가. 저자는 “세상 모든 현상의 원인을 다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지 못하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괜찮다. 코뿔소의 가죽 주름 원인이 과자 부스러기인지 빵 부스러기인지 싸우는 식이다”라고 하며 “인류의 역사도 긴 진화적 시간에서 보면 모두 예측할 수 없는”것이라고 한다. 모두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으므로 코뿔소의 가죽 주름이 무엇 때문인지 상상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장은 노화와 죽음의 진화 부분이다. 저자는 “생물학적 한계에 다다른 인간 수명을 늘리겠다며 근거가 의심스러운 연구에 천문학적 연구비가 쓰이고 있다”며 “불로장생 연구에 쓰이는 그 허망한 연구비를 차라리 다음 세대를 위해 쓰면 좋겠다”고 한다. 불사조 피닉스의 비밀은 나의 노화를 늦추고 영생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식은 부모의 삶 자체를 영양 삼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유전자뿐 아니라 부모가 남겨준 가문의 전통은 기억을 통해 대대로 내려간다. 그렇게 인류는 재 속에서 부활하며 영생을 이어가는 것이다.”

장수의 비결이 견과류나 등푸른생선이 아니고 육아라니! 


노화를 늦추고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모든 인간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생물 대멸종 위기를 가져온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고 동물의 생존 전략을 배우고 공생하고 싶다면 읽어야 할 책이다. (과학, 일반)


주소정_과학책방 사이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