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따뜻한 세상

책친구, 독서모임 - 책방 다독다독 ‘세계 문학 읽기 모임’

by 행복한독서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그와 함께 무엇을 읽을까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그때 다독지기는 『댈러웨이 부인』을 적극 추천했고, 다들 검색을 시작했다. 서평에는 한결같이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이미 우린 커트 보니것의 의식의 흐름 기법에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그의 의식을 쫓아가려니 다들 환장할 노릇이었던 기억을 아직 잊기도 전이다. 다들 버지니아 울프 책을 한번은 읽고 싶지만 이번은 아니라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독지기는 이 책을 밀어붙였다. 이럴 때, 우리의 다독 주인장은 불도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책방 다독다독

그렇게 시작된 첫날의 비장함은 다들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따뜻한 봄날, 우린 초록의 책 앞에 앉았다. 그리고 우린 첫 장부터 빠져들었다.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마치 어린이들이 해변에서 맞는 아침처럼 맑고 신선하다고,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생각했다.”


2022년이 시작될 즈음 나도 세상에 뛰어들고 싶어졌다. 이제 말이 하고 싶어진 것이다. 30대 후반에 내 인생에 불쑥 찾아 들어온 늦둥이. 그 기쁨을 온전히 느끼기엔 나와 남편의 잘못된 판단들의 결과들이 사방에서 터지고 있었다. 사는 것만도 벅찬 4, 5년의 세월이었다. 물리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힘이 들었던 때, 나를 붙들어준 건 ‘일기’와 ‘책’이었다. 생존에 급급했던 그 시절을 견디게 해준 건,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같이했던 책들이었다. 책 속의 작가들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나란 인간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아, 내가 이런 존재였던가…. 마흔 가까이 살면서도 나는 나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무지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왔으니 세상에 뒤엉키지 못하고 자꾸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있었구나 싶었다. 작가들과 대화하며 생각하고 쓰면서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그렇게 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럼 뛰어들어야지!


어디로 뛰어들까 생각하던 찰나, 내 눈에 들어온 건 성안동에 자리 잡은 ‘책방 다독다독’이었다. 책방 주인의 블로그는 투박했지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초록 또한 거기 있었다. 성안동은 꽤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그래서 울산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리고 나무와 꽃이 곳곳에 보이는 곳이다. 그렇게 매주 수요일 도장 찍듯이 출석하며 같이 읽는 지기들과의 엉킴이 점점 견고해지고 있었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같이 읽기

우린 울프 여사의 탁월한 관찰력과 그것을 언어화하는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마음에서 시작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허공 위를 쉴 새 없이 맴돌다 빅벤 소리와 함께 다시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는 사람과 풍경들. 다시 그것들에 대한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생각이 꼬리를 물다 어느 새 생각이 클라리사에게서 자연스럽게 타자로 옮겨간다.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읽다가 문득 “이거 누구 생각인 거라?” 하고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지기들. 그러고는 참지 못한다. “피터 이 자슥을 우째야 할꼬!?” 그럼 누군가 “전 이해 가능요, 리처드 같은 남자,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아요?” 그럼 우리의 설전이 시작된다. “자~! 누구랑 살아 보실랍니까? 감성과 열정 충만한, 하지만 뒷감당 안 되는 피터와 살아 보실랍니까, 아님 정리 정돈된 계획 철저하신 리처드와 살아 보실랍니까.” 그럼 다독 주인장은 “남자는 자고로 능력이 좀 있어야 하지. 아이고, 이래 불안해가 피터 같은 사람이랑 못 산다~!” 그럼 나는 “인생 한 번 사는데,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아야지, 난 들끓는 감정 없이 못삽니데이” 한다. 이렇게 우리는 답 없는 주제를 가지고 또 한 번 왁자지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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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이면 다독지기가 다시 중재한다. 다음을 읽자고, 다음을 살아보자고. 그리고 우리는 다시 낭독을 시작한다. 그리고 책 속 인물들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보며 그 속에 우리를 발견한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가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처음에는 속물적이다 싶지만, 어느 새 우리는 다시 말한다.

“나도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리고 책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다. 클라리사의 파티 속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신경 쓰며, 누구 하나 소외감이 들지 않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누군가에게 감정을 쏟으면 다른 이들에게 신경이 덜 가는 것을 알고 중심을 잘 잡으려 노력한다. 그러던 중 날아든 비보, 바로 책의 주요인물인 셉티머스의 자살이다. 삶은 좋은 것이라고, 따사로운 태양조차 좋아했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사건을 클라리사는 혼자만의 방으로 들어가 생각한다.

“그 남자는 자신의 중심을 지켜냈다. 죽음은 그것을 지켜내려는 저항이었다. 죽음은 그 중심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소통의 시도였다”라며.

나는 이 장면에서 많이 숙연해짐을 느꼈다. 나 또한 나를 잘 돌보며 살고 있는지, 혹여나 타인의 어떠한 말이나 상황에 얼룩지거나, 움츠러들지는 않는지 말이다. 그리고 타자와의 소통이 잘되고 있는지도.

그리고 생각한다. 셉티머스는 죽음으로 자신 같은 사람도 있음을 외쳤지만 나는 사는 내내 살아보겠노라고.


책 읽는 내내 우린 시끄러웠다. 책 읽는 내내 먹으며 마시며 속내를 쉴 새 없이 털어놓았다. 왜냐면 『댈러웨이 부인』 안에 우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같이 읽는다는 건, 그런 거다. 작가와 우리 지기들과 같이 끝까지 가보고 그 속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서지애_책방 다독다독 세계 문학 읽기 모임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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