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집, 박노수미술관
송희경 지음 / 이소영 그림 / 91쪽 / 19,500원 / 연립서가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168-2번지. 서촌 골목 깊숙한 안쪽에 빨간 벽돌집 한 채가 있습니다. 화가 박노수는 여기서 40년을 살았습니다. 빨간 벽돌집은 곧 ‘화가의 집’인 셈이지요. 거길 어떤 할아버지와 손자가 방문했습니다. 미술관 관람객 자격으로. 이제 빨간 벽돌집은 미술관이 되었거든요. 이름하여 ‘박노수미술관!’ 왜 미술관이 되었는지는 이 책을 읽으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할아버지와 손자 서준이는 미술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닙니다. 유머 만점인 할아버지와 호기심 많은 서준이. 두 사람은 집도 살피고, 정원도 구경하고, 무엇보다 박노수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책 내용은 거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입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대화는 흥미진진한 미술관 탐방기가 되겠지요.
첫 번째 대화는 소나무와 모란 이야기. 옛날부터 우리 화가들은 소나무와 모란꽃을 자주 그렸습니다. 소나무는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란은 기쁘고 복된 일이 항상 생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거든요. 박노수 화가도 그랬습니다. 「장생」이라는 그림은 소나무, 「길상여의」라는 그림은 모란을 그렸습니다. 실제로 박노수 화가는 꽃과 나무를 무척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안 곳곳에 꽃과 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꾸었지요.
박노수 화가는 약 100년 전(1927년)에 태어나신 분입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대학교에서 학생들은 가르치기도 했지요. 박노수 화가는 평생 우리 한국화를 그렸습니다. 덕분에 한국화 1세대 화가로 불립니다. 한국화는 우리의 전통과 정신이 담긴 그림입니다. 그런데 박노수 화가의 한국화는 좀 다릅니다. 옛날 우리 그림은 주로 먹으로만 그렸잖아요. 박노수 화가는 먹 대신에 과감하게 색깔을 썼지요.
“할아버지 : 그림 속에 쓰인 색깔을 좀 더 살펴볼래?”
“손자 : 음, 왼쪽 커다란 나무의 잎사귀가 파란색인 게 조금 낯설게 느껴져요.”
“할아버지 : 이상하게 보이니?”
“손자 : 아뇨. 오히려 신비롭기도 하고, 탁 트인 바다를 볼 때처럼 마음이 시원해요.”
“할아버지 : 박노수 화백은 맑은 파란색을 썼단다. 그래서 편안하게 느껴졌을 거야.”
「호반」이라는 그림을 보고 나누는 대화입니다. 원래 나뭇잎은 초록색이잖아요. 특이하게도 이 작품에는 짙은 바다처럼 파란 나무가 등장합니다. 화가가 파란색을 즐겨 썼거든요. 「유하」라는 그림에도 쭉쭉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온통 짙푸른 색으로 칠했지요. 이 색깔을 가리켜 ‘눈이 부시도록 푸른 군청’이라 부릅니다. 군청은 파란색을 말합니다. 쪽빛, 남색이라고도 하지요. 박노수 화가를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한국적인 색채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마침내 찾아냈어요.
미술관에는 「선소운」「휴식」「수렵도」「산속의 선비」「피는 꽃」「소년」 등 박노수 화가의 다른 작품들도 많습니다. 할아버지와 서준이는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자유롭게 소감을 말합니다.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국화가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책에는 우리 그림이 서양화와는 무엇이 다른지, 어떤 붓과 물감을 사용했는지, 옛 화가들은 산을 어떻게 그렸는지 같은 한국화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들도 소개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싹트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의 글을 쓴 송희경 작가는 한국화를 좋아하여 우리 미술사를 공부했고 우리 그림에 관한 다른 책도 많이 썼지요. 무엇보다 박노수 미술관과 인연이 깊습니다. 박노수 화가에 대한 자료 정리는 물론 작품 전시에도 참여했거든요. 그림을 그린 이소영 작가는 박노수 화가처럼 파란색을 참 좋아한다고 합니다. 작가는 책에 그림을 그리면서 박노수 화가와 즐겁게 한판 놀았다고 표현했지요.
이 책은 미술관 탐방기이지만 사실은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책에 실린 이소영 작가의 그림만으로도 또 한 편의 작품집이 되거든요. 책을 다 읽고 나면 박노수 미술관으로 막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서촌 골목 안에서 박노수미술관을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눈에 확 띄는 빨간 벽돌집이거든요.
최석조_안양 샘모루초 교사, 『도화만발』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3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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