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지음 / 64쪽 / 16,800원 / 노란상상
어릴 적부터 동물과 자연에 유독 관심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외적인 귀여움에 이끌린 관심이었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외관과는 관계없이 동물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문명을 이루고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과는 다르게 자연의 섭리에 맞춰 돌아가는 그들의 삶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특히 미지로 가득한 바다의 생태계와 그 안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한 생명체들의 신비로움에 이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찾아보게 된 여러 유튜브 영상들이나 해양 다큐멘터리들은 매우 모순적이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영상에서는 마냥 아름답기만 한 산호초에서 헤엄치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물고기들을 보여주고, 어느 영상에서는 그물에 걸려 죽어가는 고래나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죽은 바다 새나 거북이의 모습을 비추었습니다. 살아가며 바다의 진실을 가까이할 일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영상들을 보며 혼란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저 또한 그랬습니다.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바다는 앞서 말한 두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플라스틱 쓰레기와 아름다운 바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생명으로 가득 찬 바다는 죽음의 플라스틱도 동시에 품고 있죠. 생명력을 가진 물고기의 비늘과, 파도에 부딪혀가며 부식되어 떨어져 나간 플라스틱 파편은 겉보기엔 닮아있지만, 각각 생명과 죽음이라는 반대되는 개념을 상징합니다. 이토록 모순적인 바다의 현주소를 표현하고 싶어 책의 제목을 『비늘과 파편』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바다를 수영하던 주인공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바다 깊은 곳으로 끌어당겨지고, 그 속에서 죽어가는 바다의 진실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이 버린 비닐봉지에 걸려 죽어가는 물고기들, 작살에 찔린 끔찍한 모습의 고래들, 대규모 어업 그물에 갇혀 꿈틀대는 생명들을 마주한 주인공은 바다를 살리기 위한 행동을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비늘과 파편』은 대학교에 다니며 들은 수업의 과제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교수님의 권유로 『비늘과 파편』을 세계 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World Illustration Awards)에 지원하였는데, 감사하게도 신인 독립출판 부문(Alternative New Talent Category)에서 수상하게 되었고 제 수상작을 인상 깊게 봐준 출판사의 출판 제의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엔 기쁜 만큼이나 걱정되는 마음이 컸습니다. 아직 학생인 데다 작업에 대한 확신이 적었고, 상업적인 출판 경험도 전혀 없어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학생 때 첫 출판을 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좋은 경험이라 여겼기에 감사히 받아들이며 계약을 했고, 대대적인 수정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출판용으로 수정하기 전 과제물이었던 『비늘과 파편』에서는 죽음으로 가득한 바다를 헤매던 주인공이 마치 물고기가 그러하듯 인간이 버린 그물에 걸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결말의 임팩트는 강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좀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결말로 수정해야 했습니다. 또 분량을 늘리고 어드벤처 요소를 추가하여 파괴되어 가는 바다와 해양생물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 외에도 출판사와 의견을 나누며 여러 부분들을 수정했고, 결과적으로 훨씬 더 다듬어지고 매끄러운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책을 수정하는 과정이 저에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요. 제가 생각한 이야기와 상업적인 출판에 어울리는 이야기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또 과제물 제작 이후 수정 작업을 시작한 기간 동안 그림 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새로 그리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출판 작업을 하며 새롭게 시도해 본 것이 있는데 바로 별색 인쇄입니다. 『비늘과 파편』은 다른 색이 없고 오직 파란색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별색 인쇄를 위해 채색법을 바꾸고 복잡한 파일 변환을 거치는 등 과정은 조금 번거로웠지만 일반 인쇄로 제작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선명한 파란색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만든 이유는 당장 모두가 환경 운동가가 되어 극단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고 이야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행동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자각을 가지고, 더 나은 행동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독자들이 책을 읽은 후, 읽기 전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도록 느낌표를 던지고자 했습니다.
김수진 작가는 홍익대학교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노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 속 사소한 티끌의 재발견, 마음을 파고드는 위로, 자연에 대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되기도 합니다. @soo._.gr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