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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Oct 12. 2023

생명과 상상력의 보물창고

김시아의 그림책으로 보는 세상 5

고래 도서관

지드루 글 / 유디트 바니스텐달 그림 / 박재연 옮김 / 80쪽 / 27,800원 / 바람북스



백 년 전 『사랑의 선물』

방정환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학대받는 어린이를 위해 『사랑의 선물』을 출간했다. 1921년 도쿄에서 유학 중에 동화 열 편을 번안하여 연말에 엮은 것을 1922년 7월에 개벽사에서 펴냈다. 그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들을 위하여, 그윽히,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 『사랑의 선물』에서 『콩쥐팥쥐』 이야기와 비슷한 「산드룡의 유리 구두」 외 열 편의 이야기는 ‘세계 명작동화’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읽히는 이야기들이다. 방정환 선생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1920년 타고르의 시 「어머님」을 읽어보면 독자는 방정환 선생님이 왜 『사랑의 선물』을 번안하고 엮었는지 알 수 있다.


“어머님, 어머님, 두 분도 없으신 어머니! 어머님은 내 집이고 내 시골이고 내 나라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 모두 사라지고, 우주의 만유가 모두 없어진대도… 어머님만은 끝끝내 안 뺏길 내 어머니입니다.”


타고르의 시를 통해 ‘어머니’로 은유 된 방정환의 조국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 선물』이 출간된 다음 해인 1923년엔 잡지 『어린이』가 창간되었다. 올해는 2023년! 잡지 『어린이』 창간 백 주년을 기념하며 보내는 해에 우리는 정부가 2024년 문체부 예산안에서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는 발표를 들었다. 우리나라의 독서문화는 특별하게도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역사의 뿌리이기도 하다. 독서문화증진을 멈추겠다는 정부는 과연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걸까?


오늘날 『고래 도서관』

이번 여름방학에 필자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만화박물관에 갈 기회가 있었다. 운 좋게도 유디트 바니스텐달의 원화 전시회가 있었다. 유디트는 프랑스 앙굴렘만화페스티벌에서 두 번이나 대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고 있는 벨기에 작가이다. 그가 그리고 쓴 그래픽노블 『당신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동안』과 『페넬로페 : 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자』가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기에 익히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수채화와 색연필로 그린 그의 그림을 좋아해서 전시회가 반가웠다. 최근에 번역 출간된 『고래 도서관』 원화도 볼 수 있었다. 만화작가이자 초등 교사로 일하는 지드루가 글을 쓰고 유디트 바니스텐달이 그림을 그린 이 책은 그림책과 그래픽노블의 형식이 함께 어우러진 책이다.

ⓒ바람북스(『고래 도서관』)

주인공이 책을 고르기 위해 고래 배 속 도서관에 들어간 장면은 양면 페이지에 펼쳐져 독자를 상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그래서 그럴까? 전시회장 입구도 고래 도서관으로 꾸며졌다. 원화전을 보고 원서를 사려고 박물관 뮤지엄샵에 갔는데 『고래 도서관』은 모두 팔리고 없었다. 이틀 뒤에 시내에 있는 그래픽노블 전문서점을 찾아가 겨우 한 권을 살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처럼 바다도 비밀로 가득 차 있어. 사람은 가슴이 넘실거릴 때면, 펜을 들고 빈 종이를 바다 삼아 자기를 짓누르는 무언가를 던져버리지. 우리는 헤엄치는 법을 배우듯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인용문은 『고래 도서관』 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바다. 프랑스어로 고래가 사는 바다 ‘라 메르(La mer)’는 발음이 같은 ‘어머니(La mère)’를 상징한다. 고래 배 속에 도서관이 존재하는 이야기는 우체부와 임신한 우체부 아내의 사랑 이야기와 겹쳐진다. 아내의 제왕절개 출산 장면에 이어 우체부를 기다리다가 잡힌 고래의 배에서 수만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출간의 고통을 전하는 듯하다. 출산을 경험한 우체부 아내는 젖은 책을 너는 가운데 ‘인어 이야기’ 책을 다시 만난다.

바다는 예부터 상상력의 보고이다. 바다에 핵 오염수를 뿌려 고래와 모든 바다 생물을 죽이는 행위는 인간의 생명과 상상력까지 파괴할 수 있는 비인간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정부는 고래 사냥꾼처럼 책과 고래의 생명엔 관심이 없어 보여 매우 안타깝다.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교사와 학생이 끊임없이 죽어간다. 독자는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책을 통해 세계를 (간접) 경험하고 문화 다양성을 배울 수 있는데 독서문화를 장려하지 않으면 도서관과 서점이 살아남기 힘들고 다양한 책 공동체는 공간을 잃을 수 있다.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고 전해들을 수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힘과 지혜를 잃어버릴 수 있다. ‘책’에 담긴 ‘이야기의 힘’은 세다. 입시교육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아이들과 학부모 등쌀에 자존감을 잃어버린 교사들. 독서문화증진을 멈추겠다는 정부. 지옥행 고속열차를 타고 활화산으로 질주하는 대한민국은 바다에서 표류하는 난파선 같다. 

버려진 책과 이야기를 주워 담을 수 있는 독자만 있다면 우리는 이야기의 힘을 되찾을 수 있다.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을 수 있다.


요나는 고래 배 속에 사흘간 있었고, 『피노키오의 모험』에서 피노키오를 찾아다니다가 상어 배 속에 삼켜진 제페토는 상어 배 속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극적으로 피노키오와 재회한다. 고래가 죽어가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을까? 『고래 도서관』에서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도 이야기가 불행하게 끝나는 건 정말 싫다. 


김시아(KIM Sun Nyeo)_연세대 연구교수, @kim_sia_sun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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