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문학과 예술, 대중문화, 비평 등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아주 흔히 마주치게 되는 용어가 되었다. 그림책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읽은 후 물음표가 떠오르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서사가 전개되는 그림책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표가 붙여지기도 한다. 그림책이 창작 당시의 문화, 예술, 철학, 사회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창작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대 그림책에서 포스터모더니즘적 특성을 발견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욱동은 주변부의 부상, 임의성, 상호텍스트성, 장르 확산이나 장르 붕괴, 자기 반영성과 메타픽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 등이 그 특성이라고 말한다. 한편, 그림책 연구에서는 사이프와 맥과이어가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사이, 전통문학 장르들 사이, 저자·화자·독자 사이의 투과성, 문학적 규범의 전복, 서사 세계와 서사 밖 세계 사이의 경계 와해, 상호텍스트성 강화, 다양한 의미 생성 가능성, 열린 결말, 유희성, 메타픽션과 같은 자기 참조성 등을 특성으로 꼽고 있다. 사이프와 맥과이어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좀더 상세하게 열거했을 뿐, 김욱동의 설명과 어긋나는 것은 없다. 이 같은 특성 중 점점 더 많은 현대 그림책에서 글쓰기 전략으로 활용되는 메타픽션에 대해 살펴본다.
메타픽션은 허구와 실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것으로, 허구가 실제 세계가 아니라 재현된 세계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림책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함께 서사 세계를 만들어가는 공간인 만큼 이 두 층위에서 다양하게 메타픽션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 라스칼이 글을 쓰고 클로드 K. 뒤브와가 그림을 그린 『빨간 아기토끼』(마루벌)는 어렸을 때 빨간색 페인트 통에 빠져 털이 빨갛게 되어버린 아기토끼가 예기치 않은 만남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엄마토끼의 심부름으로 할머니토끼에게 먹거리를 가져다주러 가던 빨간 아기토끼는 숲에서 샤를 페로의 옛이야기 주인공인 빨간모자를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이 둘은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이미 책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운명에 대해 알고 있던 빨간 아기토끼와 빨간모자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행복한 결말로 바꾸어 버린다. 이처럼 『빨간 아기토끼』의 이야기 세계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 세계이며 이야기 속의 이야기처럼 들어간 빨간모자의 세계도 허구의 세계라는 점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빨간 아기토끼』는 허구 세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허구 세계의 구축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메타픽션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같은 메타픽션적 글쓰기는 저자, 화자, 독자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박정섭이 글을 쓰고 이육남이 그림을 그린 『토선생 거선생』(사계절)은 메타픽션의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라고 시작되는 만큼,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의 후속편이라고 스스로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의 첫 부분에서 작가인 척하는 화자는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면서 자신이 앞으로 할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청한다.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구덩이에 빠진 거북이가 “작가 양반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라고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거북이와 토끼가 모두 죽을 위기에 처하자 토끼의 입에서 “작가 양반, 독자 양반, 우리 좀 살려 주시게. 우리가 죽으면 이 이야기도 끝이란 말이오”라며 목숨을 살려달라는 간청이 터져나오기도 한다.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는 작가인 척하는 화자가 등장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등장인물이 작가를 향해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한다.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이 속한 세계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 세계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독자에게도 그 사실을 계속 알려주는 셈이다.
이 허구 세계와 관련이 있는 다른 층위의 세계에 있는 작가와 독자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언급한다는 점에서, 『토선생 거선생』이 메타픽션적 글쓰기에 기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해 인쇄된 종이 위에 구축된 서사 세계는 작가를 통해 재현된 세계이며, 이 재현된 세계는 또한 독자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의 메타픽션은 서사 세계와 서사 밖 세계 사이의 경계 와해라는 또 다른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림책에서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층위에서도 메타픽션이라는 서사 장치로 활용될 수 있는데,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크로켓 존슨의 『해럴드와 보라색 크레용』(시공주니어)을 예로 들 수 있다.
꼬마 해럴드는 뭘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밤에 산책을 하기로 한다. 텍스트의 화자는 “하늘에 달이 떠 있지 않아요. 달빛을 받으면서 산책을 하려면 달이 필요한데 말이에요”라고 말하고, 일러스트레이션에서는 해럴드가 보라색 크레용으로 달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텍스트는 “타박타박 걸어갈 길도 있어야 하고요”라고 말하고, 일러스트레이션은 보라색 크레용으로 자신이 걸어갈 길을 그리는 해럴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서로 교차하면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텍스트는 해럴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말하고 있고, 일러스트레이션은 보라색 크레용으로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중인 해럴드의 모습을 보여준다. 허구 세계가 구축되는 과정 자체를 등장인물인 해럴드의 드로잉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각적 차원에서의 메타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적 차원에서 선과 드로잉이 메타픽션 장치로 활용된 또 다른 예로는 글 없는 그림책인 이수지의 『선』(비룡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얼어붙은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가 점프를 했다가 넘어진 후 스케이트 날 자국으로 어지러웠던 호수면이 찌그러들더니 갑자기 구겨진 종이로 바뀌어 버린다. 이를 통해, 수많은 스케이트 날 자국과 소녀의 존재는 누군가의 연필 끝에서 만들어진 스케치로 구축된 재현된 세계에 속해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게다가 이 같은 메타픽션적 요소는 이미 그림책을 펼치기도 전에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이 작품의 더스트 재킷에 암시되어 있고, 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선과 드로잉뿐만 아니라, 다른 시각적 요소도 메타픽션적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데이비드 위즈너는 19세 후반에 조세프 제이콥스가 창작한 『아기 돼지 삼형제』에 기반하여 『아기 돼지 세 마리』(마루벌)를 창작하면서, 시각적 서사에서 프레임을 메타픽션 장치로 활용하였다. 늑대에게 쫓기던 아기 돼지들은 프레임 밖으로 나오면서, “어~어! 늑대가 나를 이야기 밖으로 날려버린다” “이리 나와! 여기 바깥은 안전해” “응, 우리는 이야기 밖으로 도망쳤거든”이라고 말한다.
이야기 세계 속에 있던 아기 돼지들은 이야기 안과 밖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야기 밖의 세계에서는 이야기 안의 세계에 갇혀있는 늑대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점도 알게 된다. 아기 돼지 세 마리가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는 바로 이 순간부터, 프레임도 서사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아기 돼지가 프레임 밖으로 나와 이야기 바깥 세계에 들어선 순간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도 달라지는데, 프레임 속에서와 달리 아기 돼지의 털이 하이퍼리얼리즘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레임 안에서의 아기 돼지는 거친 털의 질감 없이 맨들맨들하게 표현되어 있는 반면,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온 아기 돼지의 털은 마치 돼지를 사진으로 찍어놓은 듯한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털의 질감을 살려서 표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아기 돼지들이 재현된 세계에서 실제 세계로 이동한 듯이 보이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돼지들은 프레임 밖으로 나온 것에 만족하지 않고, 프레임 안팎을 오가며 자신들의 이야기 흐름을 바꾸기 위해 프레임들의 구성과 배치까지 바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족할 만한 안전한 서사 세계가 구축되자 다시 프레임 속으로 들어간다. 프레임 내부를 이야기 속 세계, 프레임 외부를 이야기 바깥 세계로 구분함으로써, 시각적으로 프레임이 이 두 세계의 경계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경계선 역할을 하며 메타픽션 장치로 활용된 프레임은 등장인물들이 자유롭게 안팎으로 이동한다는 점과 투과성을 띠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또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메타픽션 장치가 독자에게 책읽기의 재미를 더해주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메타픽션은 일반적으로 허구를 실제인 것처럼 간주하고 읽어가므로 심지어 마법 같은 비현실적인 요소가 나오더라도 개의치 않는 독자를 가만두지 않으려는 글쓰기 전략처럼 보인다. 등장인물에 동일시하며 이야기 세계 속에 함몰되어 있는 독자에게 “이것은 이야기 세계야”라고 말하면서, 이야기 세계에서 빠져나와 그 허구 세계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메타픽션은 독자가 텍스트와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만들어주는 서사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아이코노텍스트를 구축하는 언어의 가능성, 이미지의 서사력, 기호 간 관계, 서사 구축 과정 등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메타픽션은 독자에게 능동적인 책읽기를 요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아기 돼지 세 마리』가 그랬던 것처럼 서사와 실제의 경계를 부수고 이 두 세계의 경계 사이를 이동하며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 층위를 만들어감으로써, 독자에게 수동적인 수용자의 입장에 머물지 말고, 능동적으로 나름의 이야기 세계를 만들어보라고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엽_『그림책, 해석의 공간』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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