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데이비드 무어 지음 / 정지인 옮김 / 540쪽 / 29,000원 / 아몬드
이 책의 제목은 이미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경험이 유전자에 어떻게든 새겨진다는 말이겠지요. 결론이 명백하다고 해서 책을 읽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충분히 설득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득이 부족하면 “유전자는 설계도가 아니다” 혹은 “DNA는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주장들이 이해되었다고 오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제목만으로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와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사례는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의사는 그녀에게 유방암 발병 위험이 87퍼센트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건강에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위험도를 인지하고 가슴을 절제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국 국립 보건원 암연구소 전문가들은 그러한 확률 수치가 다른 데이터에 의해 변동될 수 있는 추정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절제할 정도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저자도 마찬가지고요. 생각해 보면 놀랍습니다. 신체 한 부분을 절제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게 하는 지식이라면 참으로 결정적인 지식 아닙니까. 그래서 저자도 자신 있게 권합니다.
이 책, 정말 신뢰할 만한가요.
할리우드 배우가 쉽게 근거 없는 결정을 내렸을까요, 아니면 이것은 아직은 증거가 부족한 새로운 시각일까요? 과학적 저작물의 신뢰성은 검증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책이 구글 학술 검색에서 281회 인용된 것을 포함하여 여러 학술지 리뷰를 찾아보았습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잡지 『Configurations』 겨울호, 24권 1호에 실린 논평에서 데릭리는 “이 책은 후성유전학 분야에서 새로운 표준이 되는 책”이라며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지식이 신뢰할 만한 책에 담겼으니 과학 분야 책이 어색하더라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합니다.
“후성유전학의 위상이 높아지면 모든 이에게 이런 메시지가 전해질 것이다. ‘당신이 생물학의 올가미에 걸려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라, 분투하라. 아이들을 주의 깊게 보살피고 돌보아라. 환경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구축하며, 지속적인 건강과 발달을 증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라. 중요한 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원제목 『The Developing Genome』이 다시 이해됩니다. 이는 단순히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계속해서 변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말일 테지요. ‘사람은 절대 안 변해’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보다 훨씬 건설적이면서도 과학적이라 속이 시원합니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이 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책을 펼쳐 충분히 설득되시길, 발전시키기를, 이 독서 경험을 유전자에 새기길 권해봅니다.
김요한_책방난달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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