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는 그림책작가의 세계
퀜틴 블레이크는 영국 최초의 어린이문학 계관 작가예요. 16세 때 잡지 『펀치』에 만화가 실릴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어요.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많은 책에 상상력이 뛰어난 그림을 그렸고, 『마놀리아 씨』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이나 『어릿광대』로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어린이책 상 등 온갖 일러스트레이션 상을 휩쓸었어요. 설렁설렁 그린 듯한 단순하고 유쾌한 그의 그림을 보면, 날기 위해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느라고 뼛속이 텅 빈 새가 생각나요. 그야말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본질만 잡은 그림이지요. 그는 그런 그림으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지만,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들도 만들었답니다.
먼저 『내 이름은 자가주』를 보지요. 행복하게 사는 벨라와 조지에게 ‘자가주’라는 이름표가 달린 작은 분홍색 아기가 들어있는 소포가 배달돼요. 처음에는 아기가 엄청난 기쁨을 주었지만 점차 다른 모습으로 바뀝니다. ‘새끼 대머리 독수리 → 새끼 코끼리 → 멧돼지 → 새끼 용 → 털북숭이’로 변하며 온갖 못된 짓을 하지요. 부모들은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를 이해하게 되지요. 그런데 퀜틴 블레이크는 멋진 반전을 선사합니다. 자가주가 멋진 청년으로 바뀌어 예쁜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결혼하려고 부모를 찾아갔더니…. 이번에는 엄마 아빠가 커다란 갈색 펠리컨으로 변해 부리를 딱딱거리며 기뻐하는 거예요. 살갗이 축 늘어진 고집스러운 노년의 모습이 부리 주머니가 늘어진 펠리컨으로 빼어나게 표현되었지요. 이 장면은 부모가 늙으면 자신들을 그토록 당황스럽고 힘들게 하던 자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인생사를 보여줘요. 결국 시간의 순서만 바뀔 뿐 서로서로 돌보는 거지요.
블레이크는 소포 모양을 늘 독특하게 그립니다. 대개 소포는 정육면체나 직육면체지만 이 책에서 소포는 모양과 무늬가 뒤죽박죽이에요. 즉 그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도 알 수 없고, 앞으로 자가주가 지그재그 무늬처럼 마구 변화할 거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퀜틴 블레이크는 『퀜틴 블레이크의 ABC』라는 알파벳 책에서도 ‘P’의 그림에 ‘parcel(꾸러미)’를 그려 넣었는데, 하도 이상하게 생겨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정말 궁금해진답니다.)
두 번째로 볼 책은 마이클 로젠이 아들을 잃고 쓴 글에 퀜틴 블레이크가 그림을 그린 『내가 가장 슬플 때』예요. 발랄하고 가볍고 유쾌한 다른 그림들에 비해, 자식을 가슴에 묻은 한 아빠의 처절한 마음이 담긴 그림은 충격적일 정도로 우울해요. 마이클 로젠의 개인사는 너무도 비극적이라, 블레이크는 이 섬세한 주제를 다루면서 죄책감을 가질 정도였지요.
첫 화면에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남자가 등장해요. 희끗희끗한 턱수염과 처진 어깨에서 힘겹게 머리를 들어올린 듯한 목의 선, 간이 타버린 듯 버석버석한 주황 피부색, 웃고 있긴 한데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지요. 액자 선마저 주인공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듯 비뚤비뚤해요.
슬픔이 ‘나’를 뒤덮을 때의 그림은 온통 잿빛이지만 아들 에디를 회상하는 장면의 그림들은 채색이에요. 사진첩처럼 갓난아기 때부터 청소년까지의 성장 과정이 들어간 그림 일곱 컷을 보며 미소 짓던 독자는 다음 장면에서 무방비 상태로 폭격 맞은 기분이 들 거예요. 텅 비어있기 때문이지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아들을 잃은 아빠의 마음을 블레이크는 새하얀 공백에 담았어요.
그러나 슬픔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라고 생각이 확대됨에 따라 ‘아들을 잃어 슬프다 → 그냥 뭐든 슬프다 → 다른 사람들에게도 슬픔이 있을 거다 → 슬픔은 누구에게나 온다’로 ‘나’는 잿빛 그림에서 채색 그림으로 바뀌어요.
‘나’는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을 바라봐요. 창 안의 사람들은 노란 불빛 속에 서있고, 그들이 바라보는 바깥세상에서 전철은 노란색 불로 환한 가운데 사람들을 싣고 달리고 있어요. 슬픔에 갇힌 사람들도, 슬픔에 갇히지 않은 사람들도 배경색을 노란색으로 한 건 무슨 의미일까요?
다음 장면에서 ‘나’는 다시금 에디를 생각하지요. 학예회에서 노인 역을 연기하던 때를 비롯해 여러 모습을 떠올려요.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보고 좋아하는 두 살짜리 에디의 모습이 나오고, 촛불 열일곱 개가 환하게 밝혀진 케이크가 이어져요. 아마 에디는 열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겠지요? 다음 펼친 장면에서 촛불이 환하게 일렁이는 저마다의 케이크를 놓고 사람들이 즐거워해요. 마지막 장면은 유난히 밝고 환한 촛불 하나가 ‘나’를 노랗게 밝혀주지요. 이 촛불의 노란색이 이루는 둥근 원은 생명과 죽음의 순환 고리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앞서 창 안과 전철 안의 노란색 또한 슬프든, 슬프지 않든 자연계에 사는 모두 그 둥근 고리 안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자신의 그림이든 다른 작가들의 그림이든, 그림책의 그림들이 책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안타까웠던 블레이크는, 런던에 일러스트레이션 센터인 ‘하우스 오브 일러스트레이션’을 세우는 데 앞장섰어요. 그래서 우리는 책에서도, 미술관에서도 풍부하고 깊은 그림책 예술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서남희_번역가,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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