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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읽자, 아늑하게

by 행복한독서

옛날과 지금에 관한 책

페르닐라 스탈펠트 글·그림 / 홍재웅 옮김 / 32쪽 / 12,000원 / 시금치



20세기와 21세기 사이, 인류는 형체가 없는 정보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디지털이 뭐더라?’ 하는 사이 우리 일상은 이미 디지털 기술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역사’를 다시 써야, 아니 그 개념을 새로 정립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지금은 2023년, 아이들은 이미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 탈역사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다. 이 책 작가도 기획 단계에서 그런 아이들을 생각한 듯하다. 디지털 혁명으로 변화한 일상은 물론 옛날에도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는 무엇인지 묻고 있다.


우선 옛날과 지금을 구분하고 새로운 ‘지금’이 계속 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 나로부터 엄마 할머니 그 이전 세대를 거슬러 가다가 나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언급해 이해를 돕는다. 그런 다음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물건이나 상황을 두고 지금과 옛날을 비교해 나간다. 지금 쓰는 청소기가 옛날에도 있었는지, 없었다면 청소는 무엇으로 어떻게 누가 했는지 보여준다. 상수도 시설이 지금 같지 않았을 때 주1회 토요일에나 씻을 수 있었던 옛 스웨덴 상황은 우리도 마찬가지리라 짐작된다. 전기 덕분에 사용하게 된 기기들이 지금 삶을 얼마나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는지도 알 수 있다. 이렇게 통신에서 의식주까지 생활 전반을 짚어가는 사이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시대로 자연스레 전환하는 과정도 알게 된다. 지금과 옛날을 견주어보는 한편 지금 쓰는 물건들은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진화할지 예상해 보는 지점도 흥미롭다.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게 달라진 기능성 신발이나 이동 방식도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옛날과 다름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는다. 팬데믹을 겪은 후 어쩌면 그런 일상은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 작가만 한 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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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보다 더 촌철살인 격인 그림은 족집게 같다.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작은 그림들 하나하나가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글을 보충하는 컷이라도 설명이 더 필요하면 말풍선을 추가해 효과를 높였다. 어려운 내용을 풀어헤쳐 놓은 그림 덕분에 다소 긴 글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오래도록 여성의 일로 치부되던 영역은 노동 주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뚜렷이 구분할 수 없게 그렸다. 청소는 함께, 세탁기를 쓰는 이는 성 구분이 잘 안 된다. 샤워할 때는 당연히 다 벗은 그림이어도 여성에게 치마를 입힌 컷을 의식적으로 두드러지지 않게 그린 점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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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잠자고 먹고 씻은 다음 쉬면서 즐기는 시간을 맨 끝에 배치했다. 일주일을 열심히 살아내고 가족과 함께 특별한 주말 저녁을 맞이하는 상황이다. 사실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아있는 풍경도 이미 옛날얘기가 되었다. 그러니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던 옛날,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아늑한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 왠지 쓸쓸하다. 생각해 보면 그런 풍경은 지금도 유효하다. 당장 텔레비전과 컴퓨터, 스마트폰을 끄고 모여 앉아 이 책을 읽자. 아늑하게.


김혜진_그림책보다연구소 대표, 『야금야금 그림책 잘 읽는 법』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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