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또 오고
아드리앵 파를랑주 글·그림 / 이경혜 옮김 / 70쪽 / 24,000원 / 봄볕
책 속의 인생은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됩니다. 이 그림책은 태어나서 여든다섯 번째의 봄을 맞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해마다 찾아온 봄을 켜켜이 쌓아 그 안에 고스란히 담긴 인생이 보입니다. 이렇듯 『봄은 또 오고』는 여러 봄날의 조각이 모인 아름다운 기억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책을 펼치면 그저 새근새근 잠자는 두 살 아기의 모습이 보입니다. 엄마 손을 잡고 바닷가에서 첫걸음마를 뗀 세 살의 봄으로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됩니다. 가족과의 추억이 가득한 유년의 봄, 친구가 가장 중요했던 학창 시절,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의 봄도 보입니다. 청춘의 봄에는 사랑에 빠지고 헤어짐도 겪고, 불쑥 혼자만의 긴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어느덧 부모가 된 주인공은 어릴 적 기억을 다시 밟으며 자신과 아이에게 새로운 봄의 여정을 선물합니다.
전에는 홀로 감탄했던 경치를 가족과 함께 바라보기도 합니다. 노년이 되어선 어릴 적 할아버지 정원에 찾아가 호두나무의 추억을 떠올려보고, 강처럼 넓고 깊어진 시냇물에서 인생의 깊이를 깨닫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와의 사랑스러운 추억은 페이지에 난 구멍과 모퉁이의 잘려 나간 조각을 통해 다음 장에도 줄곧 남습니다. 첫걸음마를 떼던 자신의 다리는 부모가 되어 걸음마를 가르치는 딸의 다리로 겹쳐지고, 세 살 봄에 아빠가 맛보게 해준 산딸기는 마지막 장까지 내내 이어집니다. 뱀을 만나 도망치던 유년의 무서운 기억 역시 오래도록 함께 보이지만, 자신도 아버지가 된 서른여섯의 봄부턴 아이와 맞잡은 손으로 바뀌어 주인공의 극복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친구의 얼굴, 첫 뽀뽀의 설렘, 손자를 만난 감동의 순간 역시 구멍을 통해 오래도록 상기됩니다.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 『리본』 『내가 여기에 있어』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은 작가 아드리앵 파를랑주는 작품마다 새롭고 창의적인 그래픽아트를 선보이며 독자에게 그림책의 신선한 매력을 선물합니다. 노란 갈피끈 하나로 다양한 상상력을 표현하기도 하고, 뱀의 기다란 몸을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봄은 또 오고』 역시 매우 절제된 색과 단순한 선을 사용하면서도 책에 구멍을 내거나 모퉁이를 잘라내는 등 다양한 기법으로 보드 북의 특성을 잘 활용합니다. 그것은 내용으로도 이어져 좋은 추억으로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과 삶의 흔적, 그리고 내 안에서 떠나지 않는 트라우마를 함께 표현해 줍니다. 이런 독특한 방식은 간결한 문장마저 풍부한 서사로 이끌어 감동을 전합니다. 또한, 작가가 의도하는 장치는 곳곳에 숨겨져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또다시 한 장 한 장 꼼꼼히 들여다보게 합니다.
배수경_어른그림책연구모임 부대표, 『복순의 꿈은 배우였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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