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서 만난 저항의 철학

취향 독서, 책방 큐레이션 - 보배책방

by 행복한독서

제주도 애월읍에 책방을 연 지 6년째 접어들었습니다. 덩달아 매달 하는 책방 독서모임도 6년째. 독서모임을 만들면서 어떤 식으로 운영하면 좋을지 고민을 꽤 오래 했습니다.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운영 방침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격월로 문학과 비문학 도서를 번갈아가며 읽기로 한 것입니다. 독서모임에 매번 오지 못해도 되니 언제든 시간이 맞는 달이면 나와도 된다는, 약간은 느슨한 결합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문학과 비문학 교차 읽기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저를 위한 설정이었습니다. 막상 그 방식대로 해보니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는 평이 많아서 계속 그렇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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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독서모임에서는 책방지기가 추천한 두 권의 책을 한 번에 읽기로 정했습니다. 다카쿠와 가즈미의 『철학으로 저항하다』와 고병권 산문집 『사람을 목격한 사람』. ‘철학이 도대체 뭐냐’는 질문을 잊을 만하면 받았기에 『철학으로 저항하다』의 1장 ‘철학을 정의하다’를 읽자마자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유명한 철학자의 이름은 몇 번 등장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얘기하는 철학은 ‘지적인 저항’입니다. 정말로 화가 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시위 현장에 가게 되고, 맞을 때 “아파”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저항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 시위에 가는 행위나 아파라고 말하는 것에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은 무의미합니다. 그것 자체로 저항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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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은 해입니다. 매해 4월에 세월호 책을 읽는 낭독을 해왔습니다. 이번에는 세월호 제주기억관에서 제주 곳곳에 세월호 기억 공간을 마련하려고 하는데, 그런 공간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주 화가 나면 ‘무작정’ 시위에 나간다고 했던가요. 얘기를 듣자마자 책방에는 공간이 많으니 충분히 설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전시가 책방에 오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누군가 내게 불만을 얘기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순간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4·16을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밖에는.

어쩌면 얼마 전에 읽은 아니 카스티요의 그림책 『핑!』을 보았기 때문일까요? 최대한 많이, 계속, 여러 가지 ‘핑’을 보내야 어떤 식으로든 ‘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가슴에 줄곧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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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이 세계를 바꿔놓기도 하지만 많이 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기든 지든 이 철학이라는 행위에 의해 그 순간 ‘세계를 보는 방식’은 이미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이 다르면 철학이 다를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유발되는 행위도 달라지게 됩니다. 다카쿠와 가즈미는 영화와 소설, 철학은 일부의 지적 엘리트가 독점하는 행위가 아니라, 민주적인 행위, 지식의 서민에게도 열려있는 자유로운 행위라고 합니다. 이 점은 3장 ‘주식(主食)을 빼앗긴다는 것’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이누인 정치가이자 문인인 가야노 시게루는 어릴 때 경험한 한 사건을 자신의 책에 실었습니다. 시게루의 집은 가난해서 생활을 꾸려가기 힘들어 그의 아버지가 불법으로 연어를 잡습니다. 경찰에게 잡혀가는 아버지를 소리치며 쫓아가는 자신의 모습과 할머니의 탄식을 글로 남겼습니다. 홋카이도 일대의 선주민인 아이누는 19세기 후반 메이지 정부로부터 언어와 전통문화를 금지당했고, 일본 본토인들의 집단 이주로 인해 토지와 수렵의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일본인들이 들어와서 연어를 잡지 못하는 금어기를 설정하자 아이누가 원래 하던 수렵, 어로, 채집 활동은 위법이 되어버렸습니다. 애초에 일본인들이 연어를 너무 많이 잡았기 때문에 금어기를 설정하게 된 것인데도 말이죠.

시게루의 일화를 읽으면 ‘안됐네’라는 동정과 눈물을 지을 수 있겠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수자의 의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노 시게루의 ‘주식’이라는 ‘개념’은 평소 주식이라는 것을 굳이 떠올려볼 필요가 없었다면 다수자에 속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합니다.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런 갱신이 당장 힘을 발휘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카쿠와 가즈미의 말처럼, 다수자가 소수자를 향한 불편한 감정이입의 회로에 진입했다면, 그 저항에는 어떤 식으로든 형태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올해 나의 저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독서모임에서도 모두에게 물어봤습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저항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무척 공감이 갔어요. 흔히 자신을 ‘극복’한다고 하지만, ‘저항’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니까요.


주소 : 제주시 애월읍 납읍로2길 15-1

인스타그램 : @bobae_books


정보배_보배책방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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