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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소박한 공간

by 행복한독서

개욕탕

김유 글 / 소복이 그림 / 40쪽 / 14,000원 / 천개의바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풀리지 않는 피로로 쉽게 잠들지도 못한다. 뜨뜻한 욕조에 들어가 몸을 담그면 나아질까? 몸의 피로는 풀리겠지만 지친 마음까지 위로할 수 있는 곳은 없을까?


『개욕탕』은 표지에서부터 ‘욕탕’ 앞에 삐딱하게 걸려있는 물 묻은 ‘개’와 반질반질 목욕탕 타일을 연상하게 하는 코팅을 만져보게 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표지를 넘기면 면지에서 따라오라는 듯 뒤를 돌아보며 가방을 메고 네 발에 신발까지 신고 걸어가는 작은 개가 나온다. 앞발 신발을 벗고 두 발로 서서는 가방과 신발, 옷을 차례로 벗어던지며 우리를 몽글몽글, 속 제목의 ‘개욕탕’으로 이끈다. 개욕탕에 온 개들은 나쁜 말들에 상처받고 힘든 일상으로 지쳐있다. 잠 못 든 개들은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 개욕탕으로 찾아온다.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두꺼운 것은 벗고, 시끄러운 것은 끄고, 나를 감싸줄 뽀송한 것만 들고 씻을 준비를 한다. 따뜻한 물로 속상한 일들도 씻어내고, 몽글몽글 김에 나쁜 말들도 지워버린다. 향긋한 향이 나는 비누를 묻혀 서로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듯 밀어주면 어느덧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의 여유는 풍덩풍덩 물놀이, 욕탕 안에서의 수영도 눈감아 주고 요구르트를 기꺼이 사고 같이 마신다.

그림3-개욕탕_본문.png

『개욕탕』은 김유, 소복이 콤비의 『마음버스』 『사자마트』를 잇는 말놀이 그림책이다. 김유 작가는 반려동물로 사랑을 받는 ‘개’와 부정적으로 쓰는 ‘개’에 주목하여 중의적인 뜻을 가지는 제목과 이야기를 만들었다. 말놀이 센스도 재밌지만 어렵지 않은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여 평범하지만 고운 말들이 빛난다. 또한 모두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마음까지 씻고 가개(게)’로 바닥까지 지쳐있었던 힘든 몸과 마음까지 싹 씻어주는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게 한다.


어린이 친구 손을 잡고 몇 번이고 개욕탕으로 다시 가고 싶다. 소복이 작가가 그린 개는 아주 예쁘지는 않지만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단순한 만화풍 그림에 표정만으로 개들의 감정을 알 수 있다. 개들의 찡그린 표정을 보면서 내가 무심코 던졌던 말들에 상처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고 반성하게 한다. 목욕탕집 개와 옆집 개를 찾는 숨은 개 찾기 놀이도 선물해 준다. 전작 『마음버스』와 『사자마트』에서 보았던 동네 풍경들을 그려 넣어 자연스럽게 세 작품이 이어지며 친근한 동네 세상이 확장된다.


말놀이 그림책의 소재로 쓰인 버스, 마트, 목욕탕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들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고 인사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소박하고 따뜻한 공간이기도 하다. 점점 사라져가는 따뜻한 동네 공간들을 김유, 소복이 콤비가 빛나는 글과 그림으로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목욕을 마치고 개운해진 작은 개가 뒤 면지에서 경쾌하게 폴짝 뛰어오른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는 그림책이다.


전선영_그림책 활동가, 내마음의그림책 대표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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