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좋아해
민정 글·그림 / 52쪽 / 16,800원 / 곰곰
우리는 모두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좋아해 좋아해』는 사랑하는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랑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약 5~6년 전 경복궁 근처 서촌에서 책의 주인공 봄이를 만났습니다. 목에는 바래고 더러웠지만 분명히 사람이 묶어준 목줄이 둘러져 있었고 주변에 개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동네에서 학대받던 강아지였습니다. 가끔 변덕스런 견주가 개를 문밖으로 풀어놓으면 개는 행복한 표정으로 자유롭게 동네를 뛰어다녔습니다. 비가 내리던 날이면 작은 가게에 들어가 난로로 온기를 느끼며 깨끗한 물과 먹을 만한 좋은 것들로 배를 채우던 봄이의 해맑은 모습이 생각납니다.
개에게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어준 이웃이 있었습니다. 저는 외출 전 혹시 마주칠까 봐 가방에 간식을 챙겨 나가는 이웃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얼마 후 이런저런 아픈 사연으로 개는 구조되었고 가족을 찾기 전 임시 보호처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제가 임시 보호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얼마 후 개를 입양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봄이라고 이름을 지어주며 봄이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봄이는 언젠가부터 제 하품을 따라 하고 바닥에서 굳어있는 등을 시원하게 늘리는 스트레칭을 할 때에도 매번 같은 동작을 똑같이 따라 했습니다. 봄이와의 교감은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어떤 것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하던 찰나 동시에 같은 말을 할 때 느끼는 상쾌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모티브를 주로 얻는데 그중 인간의 말을 못하는 동물과의 교감은 더 큰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적어도 저를 신뢰하는 반짝이는 눈과 말 대신 온몸을 움직여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만으로도 이야기는 충분했습니다.
문득 이렇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사람과 개는 같은 속도로 시간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민했습니다. 어느 날 수명을 다한 봄이를 잃은 나는 어떨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사람들을 잃을 때가 갑자기 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과 같았습니다.
어느 날 봄이와 산책을 하던 중 부드러운 바람이 봄의 향기를 꼭 안은 채 제 코끝에 앉았습니다. 이른 봄이었지만 바로 지금 개화할 것 같은 물오른 통통한 꽃봉오리에서 새어나오는 향기였습니다.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감은 두 눈 속에는 밝은 빛의 잔상으로 인해 봄 가운데의 꽃 같은 다양한 색이 번졌습니다. 눈을 감아야만 보이던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저를 궁금해하며 기다리던 봄이와 마침내 눈이 마주쳤고 봄이는 활짝 웃었습니다. 봄이의 순수한 미소를 보니 문득 일어나지도 않은 불안한 생각으로 아름다운 지금을 흘려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불안한 마음 대신 지금 함께여서 행복한 마음을 나중에 꺼내어 보기 충분하게 가득 담아놓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이 『좋아해 좋아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봄이와 함께하는 매일의 산책은 설레는 여행처럼 느껴졌습니다. 걸음 속도를 맞추고 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익숙함에 지나쳐서 놓쳤던 것들이 생생하고 풍성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마치 집으로 돌아오는 날짜가 정해진 여행자의 관점으로 낯선 곳을 다니듯 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을 더 좋아하며 정성스럽게 대해줘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습도와 기온이 높아 봄이와 산책하며 걸어도 물속을 유영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봄이도 너무 더워서 공원 분수대 곁에 머물며 차라리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생각을 시작으로 고래와 푸른 바닷속을 헤엄치고 걷고 날아다니기도 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다른 그림들도 일상 속 경험에서 느낀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좋아해 좋아해』는 다른 부분은 과감하게 덜어내고 지금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글자 수를 최대한 줄이고 색감과 면으로 자유롭고 즐거운 기분을 표현했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며 여러 생각이 인사도 없이 불쑥 들어옵니다. 불필요한 생각들은 감정이 되어 먼지처럼 쌓여가고 우리는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다고 착각하며 불편한 감정을 방치합니다. 종종 털어내고 넘치지 않게 스스로를 돌봐주지 않는다면 먼지에 잠식될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서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은 놓아주고 바로 지금, 언제나 함께 있었지만 당연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주 보고 여행하듯 함께 걷자고 말합니다. 저와 봄이와의 이야기지만 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 상관없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여러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헤어지는 어떤 날, 그동안 잘 지냈다고 인사 나눌 수 있도록 오늘을 잘 보내야겠어요. 사랑하는 이와 함께인 분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모든 분들께 안부를 전해요.”
책의 마지막 부분 작가 소개에 썼던 글의 일부분으로 대신 인사합니다. 여러분의 일상이 좋아하는 일들로 이어지시길 바랍니다.
민정 작가는 오랫동안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종종 글도 썼습니다. 요즘에도 봄이와 산책을 즐기고 그림을 그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