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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27. 2024

프로야구 인기, 그 이면을 관통하는 한국 역사

야구의 나라

이종성 지음 / 328쪽 / 18,000원 / 틈새책방 


야구는 ‘비싼’ 스포츠다. 배트, 글러브, 헬멧 등 용품이 많이 필요하다. 경제적 뒷받침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 그래서 야구는 일제강점기 시절 ‘귀족’ 스포츠로 불렸다. 『동아일보』는 1924년 11월 5일 보도에서 야구에 대해 “이 나라(조선)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비싼 스포츠로 보인다”라고도 했다. 그만큼 대중화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야구는 현재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다. 지난해 엔데믹과 더불어 810만 관중을 기록한 것만 봐도 그렇다. 10개 프로구단 총 관중 수입은 지난해 1233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 3월 서울에서 처음 열린 메이저리그 공식 개막전은 전석이 매진됐다. 테이블석 티켓 한 장 가격이 70만 원이었는데도 표를 구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올해 프로야구 또한 2015년 10구단 체제가 된 이후로 가장 빠른 70경기 만에 100만 관중을 넘어섰다. 

돌아보면 야구는 일제강점기 때도 인기 스포츠였다. 1922년 12월에 미국 야구팀이 처음 내한해 전조선군과 맞붙었는데 관중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시 입장료가 지정석 5원, 1등석 3원, 2등석 2원, 3등석 1원, 학생 25전 등으로 꽤 비쌌는데도 사람들이 몰렸다. 

야구는 어떻게 축구 등을 제치고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됐을까. 어릴 적부터 TV로 야구 중계를 보고 관련 기사를 읽는 것을 좋아했던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야구의 나라』를 통해 한국 파워 엘리트들과 야구 인기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야구는 친일파와 지일파의 문화 자본이었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면서 크리켓을 활용한 것과 비슷하게 일본은 야구를 통해 한국의 엘리트들을 포섭해 갔다. 한국의 엘리트들은 일본 유학을 통해 고시엔(일본 전국고교야구대회) 등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야구에 물들어갔다. 부농의 아들이었던 김영조는 일본 와세다 대학에 진학했다가 일본 프로야구팀에 입단하기도 했다. 

1945년 8월 해방 이후 미군정이 들어오며 야구는 또 다른 전환기를 맞는다. 미국도 메이저리그를 바탕으로 야구가 대중적 스포츠로 자리 잡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미군이 있는 곳에 야구도 있었다. 1970년대 활짝 핀 고교 야구 시대의 토대가 된 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회도 미군정기에 창설됐다. 글러브, 배트, 공 같은 야구 장비를 미군을 통해 얻을 수 있던 것도 야구 발전에 동력이 됐다. 

중소기업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등 1960년대 이후 은행 야구팀이 우후죽순 생겨난 이유도 책에 잘 설명돼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의 첫 남북 대결에 대비해 1962년 국민체육진흥법이 공포된 뒤 공기업이 스포츠팀 창단의 책무를 떠안게 됐는데 당시에는 은행도 공기업이었다. 은행 사원 중에 야구를 하는 상고 출신이 많았다는 점도 야구팀 창단의 불을 지폈다. 이 밖에 야구를 좋아하지 않던 박정희와 전두환이 어떻게 야구 한일전을 이용했는지도 잘 서술돼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이런 의문이 문득 든다. 만약 해방 이후 ‘야구의 나라’ 미국이 아니라 ‘축구의 나라’인 유럽 어느 국가가 한국에 주둔했다면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는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그랬다면 부산 야구가 32년간 우승이 없어서 고통받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김양희_한겨레신문 스포츠 팀장, 『인생 뭐, 야구』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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