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나는 도서관 여행
도서관 지식문화사
윤희윤 지음 / 476쪽 / 25,000원 / 동아시아
책은 누군가의 미래를 위해,
다가올 세대를 위해,
한마디 남겨놓은 흔적입니다.
책은 원시인이 동굴에 남겨놓은
벽화와 같은 정신을 나눠 갖습니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에 기대어 기록과 보존에 대한 인류의 본성을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기억하고자 소망한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책과 도서관은 어떤 의미였을까.
『도서관 지식문화사』는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도서관의 탄생과 시대마다 마주한 변화와 생명력을 살핀다. 서양과 이슬람의 역사, 한국과 동아시아의 역사까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도서관에 관한 세상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모았다. “고대의 항아리가 서고의 원형이라면 동굴은 도서관의 모태와 같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고대의 도서관은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넘나든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장서 이십만 권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장서 목록이나 색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규모나 범위를 실증하기 어렵고, 그래서 전설에 머무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가. 도서관의 시원을 찾아 질문하고 상상하는 즐거움과 함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과제로 이어지는 도서관의 역사성을 지켜보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도서관 시간 여행자가 된다.
아테네 시민들과 로마제국의 도서관은 일찍이 복합 문화 공간에 대한 경험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정원, 예술 작품, 강의실을 갖춘 새로운 다목적 공공 광장 및 문화센터를 제공받았고, 도서관의 종류도 황실, 신전, 학당, 목욕탕 등으로 다양했다. 당시의 관장이나 사서에게 높은 전문직 지위가 부여되었고, 대중의 접근이 쉬운 공중목욕탕 등에 개방형으로 도서관을 건립했으며, 장서는 지역의 문화 전통과 집합적 기억의 보물로 여겨졌다. 시민의 삶 한복판에 놓인 도서관 이야기를 통해 도서관은 인류의 장구한 정신세계가 집적된 공간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문화사 속에 숨은 유추와 변증들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사기』에 도가를 창시한 노자를 서고 관리자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가 중국 최초의 도서관장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는 로마인들이 비밀회의 장소에 장미를 매달아 그 아래서 주고받은 이야기의 비밀을 유지했으며 미국 의회도서관에는 장미 320개로 장식한 황금빛 천장이 있고 뉴욕 공공도서관에는 ‘장미열람실’이 있다는 깨알 같은 주석이 있다. 이는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처럼 과거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장미를 흔적도 없이 소실된 수도원 도서관에 비유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어 도서관 문화사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준다.
화재, 약탈, 도난, 자연재해, 정치적 탄압 등에도 수집과 보존의 역할을 다한 수도사들의 집요한 노동과 르네상스가 이슬람 사원에 병설된 ‘지혜의 집’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사회적 편견과 오류도 바로잡을 수 있다. 잊지 않아야 할 질곡의 역사도 있다. 나치의 베를린 분서의 상징인 바벨광장의 조형물과 매장도서관은 나치가 위대한 지식 문명을 학살했으나 도서관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침묵의 저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왜 식민지에 공공도서관과 문고를 설립했는지,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한 교화 기관으로 작용했던 비운의 역사 또한 기억해야 한다. 책으로부터 멀어지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진언이자 주문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수 권력 집단의 금서와 분서, 전쟁을 통한 도서관 파괴와 전리품 탈취, 유적지에서 발굴한 지식 문화재 약탈과 반출, 검열을 이용한 지적 자유의 억압과 지식인 탄압은 계속되어왔다. 그런데도 책과 도서관은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다. 현대 도서관의 새로운 시도는 물론 직면한 위기와 해법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오랜 지혜와 혜안이 담겨있어 경청할 필요가 있다. 미래 사회에서도 공공도서관은 선택적 소비재가 아니라 필수적 공공재로서 시민의 삶과 함께 성장하는 유기체니까 말이다.
는 저자의 말은 울림이 크다.
뉴욕 공공도서관은 “장서는 곧 도서관의 심장”이라고 천명하고,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도서관을 “인류의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도서관 지식문화사』를 읽으며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책과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깊이 성찰해보는 것이 아닐까?
정봉남_광주광역시교육청 시민참여팀장, 전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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