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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28. 2024

그림책작가 이수지의 일과 삶 이야기

만질 수 있는 생각 

이수지 지음 / 344쪽 / 19,800원 / 비룡소



한국 그림책 역사를 말할 때면 언제나 언급되는 작가가 최초의 단행본 창작 그림책으로 여겨지는 『백두산 이야기』를 만든 류재수이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 그림책 역사에서 반드시 언급될 또 다른 작가가 등장했다. 바로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그림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이수지이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24년 봄, 그녀는 작가 이수지로서뿐만 아니라, 인간 이수지로서 독자들을 찾아왔다.


이 책은 모순어법 같은 제목 『만질 수 있는 생각』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제목 『만질 수 있는 생각』은 그녀의 그림책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형태 없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재미있고 즐거운 생각들이 그녀의 손가락을 통해 만질 수 있고 보이는 것으로 탄생하니 말이다. 노출 제본(초판 한정)으로 된 책의 물성도 독자의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 작은 책을 펼쳐 봐』를 상기시키는 표지 이미지는 독자에게 이 책의 문턱을 빨리 넘어서 보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독자로서의 호기심과 설렘을 안고 이 책을 펼쳤고 거기서 작가이자 인간 이수지를 만났다.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장의 구분이 큰 경계선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이야기가 강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글 없는 그림책작가의 대명사인 이수지 작가는 맛깔나는 글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작품과 그 작품을 둘러싼 삶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이수지에게 영향과 영감, 자극을 주었던 그림책, 그림책작가, 영화, 일상 등도 만날 수 있다. 그 덕에 이 책에 소개된 또 다른 작가와 작품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책을 읽다 보면 메이킹 필름을 보는 느낌도 든다. 작품의 탄생을 둘러싼 인간 이수지의 희로애락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수지 작가가 글 없는 그림책을 두고 독자를 향해 “이야기는 너에게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에 안착하는 순간부터 독자는 “오독이란 말조차 불필요”할 정도로 자유롭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것은 롤랑 바르트의 그 유명한 표현 “작가의 죽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현대 독자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렇긴 해도, 작품의 기원인 작가의 숨겨진 생각을 “만져볼” 수 있다면, 독자는 그녀의 그림책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그림책을 둘러싼 출판문화에 대한 문제의식도 자연스럽게 제기한다. 그림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동반자인 출판사와의 관계, 그림책이 세상에서 함부로 사용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작성되어야 하는 계약서, 저작권 문제 등에 대해서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진솔하게 나눈다. 당당하지만 찬찬히 풀어가는 그녀만의 이야기 방식으로 인해, 이런 문제 제기가 오히려 다른 작가들, 특히 앞으로 이 길을 걸어가게 될 작가들에 대한 인간적 연대감으로 느껴진다. 긴 이야기를 끝맺으며 그녀는 “책상 위의 프로젝트는 일이기도, 삶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이 책을 작가 본인의 말로 소개해야 한다면, 바로 이 어구를 꼽고 싶다.


이성엽_『그림책, 해석의 공간』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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