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책방 문화 탐구
한미화 지음 / 408쪽 / 23,000원 / 혜화1117
『유럽 책방 문화 탐구』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저자의 안목과 탐구력과 집중력에 감탄했다. 이 책은 가볍게 유럽의 책방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책과 책방을 중심으로 유럽의 문화와 역사와 출판 산업의 흐름을 알려주는 인문서이다. 아울러 대학과 도서관, 도시의 역사까지도 알려준다. 그뿐만 아니라 저작권법의 역사와 어린이책의 역사도 잘 정리했다. 어린이책 상의 대표인 뉴베리상의 역사를 소개해 준 것은 더욱 좋았다. 작년에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도서관에서 뉴베리상 100주년 기념으로 그동안 수상한 책들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았는데 그 감동이 되살아났다.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등 여성 글쓰기의 역사와 중요성을 다룬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피터 래빗 이야기는 깜짝 선물이었다. 당장이라도 저자의 피터 래빗 컬렉션을 보러 가고 싶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역사를 소개한 꼭지에서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나는 1992년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처음 갔고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가보았지만, 그 자세한 역사는 지금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책 뒤쪽에 있는 주석과 참고문헌을 보면 저자가 단지 유럽 책방들을 휘둘러보고 소감을 쓴 것이 아니라 자료들을 뒤지며 준비를 철저히 하고 깊이 있게 탐구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나는 책의 시작인 런던 세실 코트의 책방 꼭지를 읽으면서부터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저자는 세실 코트뿐만 아니라 여기와 맞닿아 있는 코벤트 가든의 역사까지도 상세히 알려주었다. 코벤트 가든과 세실 코트를 여러 번 가보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두 곳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2012년 당시의 포일스 서점 전경 사진을 보면서는 런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포일스 서점과 지금의 포일스가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 보고 싶다. ‘충성도 높은 고객’과 ‘현실적으로 감당할 만한 수준의 임대료’로 건재하고 있는 세실 코트의 왓킨스 서점도 꼼꼼하게 다시 살펴보고 싶다.
이 책에서 저자는 ‘디지털 변혁기에 책방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계속 던진다. 영국은 워터스톤스 같은 대형서점도 서점다운 서점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변혁기의 오프라인 책방은 출판과 책방이 더는 매스미디어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방은 지역의 특성과 취향에 맞는 책과 상품을 팔아야 한다. 작은 책방이 살아 있는 동네는 사람을 부르고 마을을 살린다는 사례를 영국 바터북스, 토핑, 리키즈북숍 같은 책방을 소개하면서 보여주었다. 매력적인 동네책방이 있는 도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만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증거라는 사실도 영국 올해의 독립서점상을 받은 책방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저자가 꽤 비중있게 다룬 ‘돈트 이야기’는 이 책의 별미였다. 돈트북스의 성공을 이끌어낸 제임스 돈트는 영국의 대형서점 체인인 워터스톤스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미국 반스앤드노블의 수장으로 영입되었다. 제임스 돈트의 미국 반스앤드노블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해마다 미국 반스앤드노블을 갈 기회가 있었다. 올해도 미국 오클라호마에 있는 반스앤드노블에 갔는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변화의 물결이 아직 미국 남부에 있는 지점까지는 미치지 못했으리라.
이 책에 소개된 프랑스의 문화 정책은 여러모로 부럽다. 주요 거리의 1층 상가를 보전하여 거리의 활력을 지켜나가는 세마에스트와 도서정가제를 지켜주는 랑법, 파리 센강가의 부키니스트는 정말 대단하다. 도서정가제가 책방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도서정가제 역할을 하던 NBA(Net Book Agreement) 협약을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폐지한 영국과 도서정가제를 지키는 프랑스 책방들의 증감 추이로 저자는 그 영향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책방은 세상과 정신이 만나는 곳이고 어렵지만 존재해야 하며 고유한 책방의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한다. 정체성은 이어가되 변화해야 한다. 또한 한 나라의 책방 문화는 간단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책방 문화가 있는지, 우리의 책방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읽는 내내, 서평 글을 쓰면서도 머리와 마음이 무거웠다. 책방지기로서의 자기 성찰과 반성, 괴로움과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저자가 독일,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의 책방 문화 이야기도 써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조은희_조은이책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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