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술관
조안 리우 글·그림 / 32쪽 / 13,000 / 단추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우리 일상 속 매우 특별하고 다양한 의미를 지닌 장소입니다. 평소 그림책 이야기의 바탕이 되어주거나 전시 공간이 지닌 의미를 주제로 다룬 그림책이 출간되면 꼭 찾아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요. 아이가 몸을 이용한 자신의 그림자놀이가 매우 즐거워 보이는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이 이 작품의 이야기 주제를 잘 대변하는 듯 보입니다. 다소 이해가 잘되지 않는 작품의 의미를 허락된 거리 내 최선을 다하여 밀착해 바라보는 다른 관람객들과 달리 독자 쪽으로 시선을 돌려 만들어낸 그림자 이미지는 동일한 공간에 전시가 되어있는 핑크색 조각품과 유사한 조형적 형태로 탄생합니다. 그림책 본문에 등장하는 헨리 무어의 작품들과 같이 인체 구조에서 시작된 수많은 현대 조각 작품도 우리 모습에서 발상한 것처럼 마치 작가는 ‘어려워하지 말고 당신이 바라보는 소년처럼 그냥 즐기면 어떨까?’라고 말을 건네는 듯 느껴집니다. 바로 표지 속 아이가 전시장을 대하는 행동이 작가가 말하려는 미술관 이야기의 관점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예술을 어렵게 보지 마세요!’라는 이야기를 던지고 시작된 표지를 넘기면 면지에 구불구불 스프링 같은 오일 파스텔 드로잉을 만나게 됩니다. 어! 이게 뭘까? 어디서 본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주의 작가 사이 트웜블리의 칠판화 연작을 헌정하여 그려 놓은 이미지였습니다. 2014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화 853억 원에 낙찰이 되어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낙서와 별로 다르지 않은데 왜 큰 금액을 지불하고 구입했는지가 뉴스가 될 정도로 일반 관객들이 이해하기에 고난도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면지에서 호락호락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예고하며 관객들의 미술관 입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당당하게 입구를 지나 전시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주인공과는 달리 많은 관람객은 안내도와 해설지를 펼치고 작품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합니다. 본격적으로 작품 관람이 시작되는 다음 페이지에 등장한 작품은 액션 페인팅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물감 뿌리기 기법으로 제작된 잭슨 폴록의 작품입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의 뒷모습 사이로 아이는 천진하게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다음 장으로 넘겨보니 거장의 추상회화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닌 관람객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매우 진지하고 심각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마치 예술은 즐겁게 즐겨야 한다는 듯 모네의 대표작인 「수련」 연작을 뒤로하며 그림과 유사한 푸른 색감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창밖 나무와 푸른 하늘 사이 날아다니는 새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합니다. 아이의 눈에 투영된 예술은 도자기 위에 푸른 라인으로 그려진 자연과 관람객의 타투 일러스트레이션 모두 훌륭히 호기심을 충족 시켜주는 동일한 예술로 보입니다. 사이 트웜블리의 칠판화는 갤러리 창밖 달팽이들과 어울리며 등장한 덩굴들의 움직임과 흡사한 재미를 제공하며 우리 삶 속 예술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고 있음을 작가는 독자에게 말합니다.
이러한 일상 예술의 즐거움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는 작품의 후반부 영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조각가 헨리 무어의 인체 연작으로 보이는 작품들 사이로 아기와 인사를 나누며 놀이공원의 조형물처럼 활용됩니다. 작가의 이야기 초점에 익숙해진 독자에게는 다음 장으로 연결되는 호안 미로의 후기 추상 작품들과 알렉산더 콜더의 모빌도 어린이의 시선에서 보는 흥미 가득한 즐거움입니다. 그 호기심은 피에트 몬드리안의 직선으로 이루어진 비구상 작품과 네모난 창틀 사이로 흘러 들어온 그림자 형태와 연결되어 아이는 자신만의 작품을 즐겁게 창조해 냅니다.
작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이란 세계를 어떻게 어린이 시선에서 유쾌하게 바라보고 즐겁게 감상하는 이야기와 그림으로 전개할 수 있었을까요? 다시 첫 장부터 천천히 살펴보며 작품의 후반부 입구에서 기다리던 엄마를 만나는 장면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의 색감과 구도의 배치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건축과 유사하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평소 인간과 환경의 친근함을 강조한 멕시코 출신의 건축가는 늘 건축물에 들어오는 빛과 건물 주변의 물에 대해 중요함을 강조했고 핑크와 같은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해 그를 색의 마술사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조안 리우 작가의 핑크를 기반으로 주변에 대치된 원색의 조화와 매우 단조롭지만 귀엽고 친근해 보이는 등장인물의 캐릭터적 성향은 ‘예술은 그리 난해한 세계가 아니야’라고 그녀만의 친절하고 유쾌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듯 느껴집니다.
류영선_그림책평론가, 『그림책 보는 기쁨』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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