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고목나무
박상진 지음 / 356쪽 / 24,800원 / 눌와
예전에 놀라움과 기쁨으로 탐독했던 『궁궐의 우리 나무』의 저자 박상진 교수가 쓴 『궁궐의 고목나무』는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나무에 대한 책이다. 아마 누구나 살면서 고목나무 한두 그루쯤은 보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내가 처음 만난 고목나무는 어린 시절 시골 동네의 당산나무인 380살 된 느티나무다.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난 고목나무는 이 책에도 소개된 종묘의 갈참나무였다. 우리 시골 동네에서 참나무는 땔감이었다. 동네 주민들이 하도 자주 베어 쓰다 보니 모든 참나무들이 관목화되어 내 키보다도 작았다. 참나무는 작은 나무인 줄로만 알고 살다가 종묘의 갈참나무 고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멋진 모습에 반해 그 자리에서 바로 그리게 되었는데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모든 고목나무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바로 이때인 것 같다.
책은 『동궐도』 고려대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궁궐의 고목나무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동궐도』를 본 적도 없었기에 저자 덕분에 처음으로 보게 되었고, 『동궐도』 자체가 나무는 물론이고 드므(넓적한 독)까지 자세히 그릴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졌는데 저자 또한 그 그림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어떤 나무를 그린 것인지 유추하고 궁궐의 역사와 유래, 편액의 내용까지도 소개하며 마치 함께 『동궐도』 안으로 들어가 궁궐을 샅샅이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창경궁의 회화나무, 까치집까지 그려놓은 옥천교의 매화나무 등 사연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냐마는 역시 조선이 개국하기도 전에 이미 그 자리에서 살고 있었던 천연기념물 194호 규장각 향나무는 궁궐에 사는 생명체 중에 가장 나이가 많다 하니 꼭 한번 가서 다시 보고 싶다.
고목은 참 신비한 존재다.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세월의 풍파를 오롯이 견뎌낸 노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봄이 되면 어김없이 막 태어난 아기처럼 말간 연두색의 잎을 내밀고 꽃을 피워낸다. 이렇게 역설적인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간직한 것이 고목의 매력이다.
“창덕궁에 갈 때마다 이 회화나무부터 먼저 알현한다. 오랫동안 간직한 역사의 흔적들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도록 제발 살아있어만 주라고 빈다.”
이 문장이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인 듯하다.
오래된 나무는 생태적으로도 후손을 많이 길러내고, 많은 동식물들과의 관계를 이어오면서 큰 역할을 한다. 또한 주변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고, 쉬고 싶게 하는 안식처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자연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고목 같은 존재다. 얼굴엔 어느새 주름이 가득하시지만 늘 새로운 새싹을 피워내듯이 발품을 팔아가시며 새로운 연구와 저술을 하시는, 고목나무의 역설적인 매력을 갖고 계신 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나무 이야기를 읽더라도 저자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기댈 수 있고 위로를 해주던 고목처럼 저자도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기댈 수 있는 고목나무로 존재해 주시길 바란다.
황경택_만화가, 숲해설가, 『나무 문답』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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