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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ug 23. 2024

역사로 만나는 우리 나무 이야기

궁궐의 고목나무

박상진 지음 / 356쪽 / 24,800원 / 눌와 



예전에 놀라움과 기쁨으로 탐독했던 『궁궐의 우리 나무』의 저자 박상진 교수가 쓴 『궁궐의 고목나무』는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나무에 대한 책이다. 아마 누구나 살면서 고목나무 한두 그루쯤은 보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내가 처음 만난 고목나무는 어린 시절 시골 동네의 당산나무인 380살 된 느티나무다.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난 고목나무는 이 책에도 소개된 종묘의 갈참나무였다. 우리 시골 동네에서 참나무는 땔감이었다. 동네 주민들이 하도 자주 베어 쓰다 보니 모든 참나무들이 관목화되어 내 키보다도 작았다. 참나무는 작은 나무인 줄로만 알고 살다가 종묘의 갈참나무 고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멋진 모습에 반해 그 자리에서 바로 그리게 되었는데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모든 고목나무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바로 이때인 것 같다.  


책은 『동궐도』 고려대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궁궐의 고목나무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동궐도』를 본 적도 없었기에 저자 덕분에 처음으로 보게 되었고, 『동궐도』 자체가 나무는 물론이고 드므(넓적한 독)까지 자세히 그릴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졌는데 저자 또한 그 그림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어떤 나무를 그린 것인지 유추하고 궁궐의 역사와 유래, 편액의 내용까지도 소개하며 마치 함께 『동궐도』 안으로 들어가 궁궐을 샅샅이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동궐도』 선원전 앞 측백나무_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사도세자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창경궁의 회화나무, 까치집까지 그려놓은 옥천교의 매화나무 등 사연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냐마는 역시 조선이 개국하기도 전에 이미 그 자리에서 살고 있었던 천연기념물 194호 규장각 향나무는 궁궐에 사는 생명체 중에 가장 나이가 많다 하니 꼭 한번 가서 다시 보고 싶다. 


고목은 참 신비한 존재다.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세월의 풍파를 오롯이 견뎌낸 노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봄이 되면 어김없이 막 태어난 아기처럼 말간 연두색의 잎을 내밀고 꽃을 피워낸다. 이렇게 역설적인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간직한 것이 고목의 매력이다. 


“창덕궁에 갈 때마다 이 회화나무부터 먼저 알현한다. 오랫동안 간직한 역사의 흔적들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도록 제발 살아있어만 주라고 빈다.” 

이 문장이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인 듯하다. 


오래된 나무는 생태적으로도 후손을 많이 길러내고, 많은 동식물들과의 관계를 이어오면서 큰 역할을 한다. 또한 주변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고, 쉬고 싶게 하는 안식처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자연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고목 같은 존재다. 얼굴엔 어느새 주름이 가득하시지만 늘 새로운 새싹을 피워내듯이 발품을 팔아가시며 새로운 연구와 저술을 하시는, 고목나무의 역설적인 매력을 갖고 계신 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나무 이야기를 읽더라도 저자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기댈 수 있고 위로를 해주던 고목처럼 저자도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기댈 수 있는 고목나무로 존재해 주시길 바란다.


황경택_만화가, 숲해설가, 『나무 문답』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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