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 노년 노동자가 희망하는 최소한의 윤리

두렵지않은 노후

by 행복한독서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지음 / 260쪽 / 15,000원 / 후마니타스



이 글을 쓰는 지금 연 이틀 비가 내린다. 괜히 좋다. 이 책의 저자인 경비 노동자에게 가장 반가운 날이 갖은 집무를 잠시 멈출 수 있는 비 오는 날이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라디오를 켜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비가 내려 주는 축복”이라 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감성을 가진 존재는 분명 사람이다. 그런데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이런 말이 지배하는 곳이 바로 그 ‘사람’의 노동 현장이다. 이런 현실에 맞서 저자는 쓰기로 한다.

“우리가 인간다움을 잃어선 안 될 것 같았다”는 말에 이 책의 이유이자 목적이 담겨있다.


이 책에는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임시 계약직 노년 노동자의 상황이 글에 베일 정도로 날카롭고 섬세하게 기록돼 있다. 한 줄 한 줄 고통이 빼곡하지만, 글쓴이의 윤리는 고통의 토로에 그치지 않는다. 이 글에는 앞선 이들의 얘기에 자기의 얘기를 보태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부르는 힘이 있다. 필자가 출간을 결심하게 된 건 ‘조선소 노동자들, 광부, 에어컨 수리 기사, 알바생, 콜센터 직원, 이주노동자,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책들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노동자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그는 자기의 고통과 연결점을 찾았고, 노동일지에 같은 처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어떤 진상 조사 보고서나 인터뷰보다도 정확하게 노년 노동자들의 상황이 이 노동일지에 기록되었다. 저자는 그저 ‘가슴 아파하라’고 고통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이 고통으로 연결된 삶을 깨우치려는 데 가치를 두었다.


속상한 얘기와 사건들 더미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인간다움을 길러낸다. 저자와 같은 처지의 노동 현장에서 연결됨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한다. “콜센터 상담사는 경비원을 동정하고, 경비원은 그들을 동정했다. 이 빌딩에서 경비원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이들은 그들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서 “상대를 위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아파트 옆 편의점에서 시급 6,030원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 우산을 빌리러 오자 필자는 한 개뿐인 우산을 내준다. 그 학생은 필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딱 두 사람인 알바생 중 하나였다. 추위에 밤새 덜덜 떨며 같이 밤을 새우다 보니 노숙자와 경비원은 어느덧 친구가 되었다. 고됨의 한복판에서도 저자는 그런 관계들 속에서 자주 외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도울 것이 생겼다”고.


“할머니. 제가 틈나는 대로 꼭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70대 청소 노동자의 과외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상대는 중학생 손주의 공부를 도우려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 15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쓸고 닦는 사이 계단 아래에서 공부한다는 분이었다.


“하루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여섯 달을 그렇게 함께했다. (…)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랍고 행복했다. 시급 노동자로 일하는 동안 그때보다 행복했던 시간은 없었다”

고 저자는 회상한다. 그리고 저자는 또한 그분에게 배운다. 기출 문제집 풀이로 빨리 요령만 파악하려고 공부했더니, 할머니는 그런 식으로 공부하고 싶어 하지 아니했다.


“할머니는 국어책에 나오는 시를 사랑했고, 새로 외우는 영어 단어들, 그리고 역사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좋아했던 것”이다. 필자가 비 오는 날 음악을 듣는 사람이듯이, 필자보다 더 노년의 노동자에게도 자신만이 좋아하는 생의 운율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각 사람의 ‘고유성’이라 한다. 그리고 그 고유성을 존중하는 것이 인권이다.


이렇게 필자는 말하는 이, 쓰는 이로서의 윤리에 최선을 다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서 듣는 이, 읽는 이의 윤리가 요구된다. 말하는 행위가 말하는 이를 변화시킨다면, 듣는 이의 윤리 또한 그러할 것이다. 무엇이 변화돼야 할까? 책에는 이미 여러 가지 답이 나와 있다.


‘사회적 약자들도 인간적 품위를 보장받는 나라’라는 성탄 메시지가 가슴에 박혔다는 필자는,

“‘인간적 품위’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 수 있는 나라’를 원했을 뿐”

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적 품위와 최소한의 생계비, 이 둘은 배치되지 않는다. 인간적 품위를 뒷받침하는 것이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하는 등의 제도로 뒷받침돼야만 한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 간담회에서 한 경비 노동자가 요구한다.

“의원님, 경비원들이 씻고 먹고 잘 수 있는 기본적인 시설의 기준을 정하는 조례를 제정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 시의원이 어색하게 자리를 피하자, 다른 시의원이 귓속말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떤 간 큰 구청장이나 시의원이 그런 조례를 만들려고 하겠어요? 당장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아파트 주민들이 반발할 것이고 그리되면 다음 선거는 포기해야죠.”


노동자의 근무 환경 개선에 찬성하고 그 부담을 같이 지는 ‘편’이 되는 정치가 필요하다. 저자와 같은 노동자들의 더럽혀진 손은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했으나, “내가 일한 시급의 일터에 근로자를 위한 샤워장이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한다. “하지만 세상은 기꺼이 손을 더럽히는 사람들에 의해 깨끗이 정리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저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상태를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듣는 이의 윤리일 것이다. 최근 돌아가신 경비 노동자 최 모 님의 명복을 빈다.


류은숙_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사람을 옹호하라』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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