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을 손잡게 하는 기억의 뜰

by 행복한독서

막내의 뜰

강맑실 지음 / 288쪽 / 16,000원 / 사계절



『막내의 뜰』을 읽던 날 봄비가 오래 오고 있었다. 마당 곳곳에서는 막 움트는 것들이 비에 젖고 있었다. 넉넉한 봄비는 뿌리까지 온전히 적셔 건강한 잎과 꽃을 피워낼 것이다.


『막내의 뜰』의 ‘막내’는 꼭 봄비를 흠뻑 맞는 마당의 새순 같다. 번쩍 들어 안아 들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새끼!”라며 활짝 웃는 아버지, “내 강아지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해쓰까잉?” 하는 엄마.

막내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 이 책은 그 막내가 쓴 막내의 이야기다. 아니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막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일곱 개의 집 이야기다. 막내는 태어나면서부터 열한 살 때까지 열 개의 집을 거친다.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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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막내는 어린 시절 살았던 열 개의 집 중 “일곱 개의 집에 머물러 유년의 기억을 불러”냈다. “집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게 신기해, 어릴 적 살았던 집의 평면도를 그리고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배운 그림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고 강아지, 과꽃, 풍경 같은 것들을 그렸다.


『막내의 뜰』에는 막내가 그렇게 불러낸 유년이 오롯이 살아난다. 집의 풍경은 물론 떡과 참기름 같은 것들을 들고 서울에서 공부하는 언니에게 가는 엄마. 이불 홑청을 빨아 다듬이질하고 꿰매는 엄마,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가르쳐주는 큰언니, 다친 눈을 찡긋하며 웃는 외할머니, 아스팔트를 붓기 전에 막내를 데리고 아직 흙길인 금남로를 걷는 큰오빠 들이 모두 살아난다. 그리고 바로 위 밝오빠와 별언니.


이 책은 막내의 가족에만 머물지 않는다. 막내가 살던 1960년대 남도의 한 풍경이 살아있다. 잔칫날 걸인들이 찾아오면 정성스럽게 상을 차려내는 풍경, 가마솥에 물을 데워 아버지부터 7남매와 어머니까지 차례대로 목욕하는 풍경. 그리고 동치미를 곁들여 찐 고구마를 먹고, 보리순이 없을 때는 묵은 김치와 말린 무청을 끓여내는 홍어앳국 같은 남도의 요리 풍경까지.

그리고 혼자인 막내가 성장하는 모습이 있다. 터울이 많다고, 전학 왔다고, 관사에 산다는 등등의 이유로 혼자 노는 막내. 그 막내는 혼자 다락방에 들어가고, 책을 읽고, 깊은 우물에 들어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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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그려낸 유년 이후의 삶은 나는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막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한, 그래서 그려내지 못한 ‘유년의 뜰’도 모른다. 그러나 『막내의 뜰』을 읽으며 봄비를 듬뿍 맞고 아래로 깊은 뿌리를 내리는 나무를 생각했다. 가지는 때로 휘어지고 꺾이지만 땅속 깊이 내린 뿌리는 그 어떤 것도 건드리지 못한다. 막내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언니오빠들 중 누구 하나 편안하고 순탄하게 산 사람은 단연코 없다. 인생은 파란만장하기에 살 만하다고 여기기라도 하듯, 그렇게 숱한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했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막내의 삶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살다 보면,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의 풍랑을 헤치며 혼자서 노를 젓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라고.


그러나 막내는 “세상이 요구하고 강요하는 삶의 방식과 잣대를 좇지 않을 나만의 낙관과 의지” “경쟁 사회의 톱니바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을 나만의 낙천과 여유”를 갖고 살아낸다. 넉넉한 유년의 뜰에서 맘껏 자란 덕분에. 그리고 그 막내는 자라 우리 사회의 어른이 되었다. 사계절 출판사 강맑실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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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왜 이리 좋은지. 서툰 그림은 또 얼마나 마음을 따듯하게 감싸는지. 천천히 산책하듯 읽다 봄비 오는 마당을 걸었다. 사방에서 봄이라고 터지는 새순들이 모두 물을 머금고 있었다. 봄비가 그치면 이것들은 쑤욱 자랄 것이다. 바라보는 내 몸이 다 시원해 허리가 쭉 펴졌다.


나의 유년의 집에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할아버지는 소리를 하고, 할머니는 이불 홑청에 풀을 먹이고, 엄마는 황석어젓을 담그고, 아버지는 흙 묻은 바지를 털고 섰다. 꿈같은 시절이 『막내의 뜰』과 손을 잡고 있었다.



임후남_책방 생각을담는집 대표, 『시골책방입니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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