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최지혜 지음 / 320쪽 / 18,000원 / 혜화1117
언젠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때마침 일요일 아침이어서 성당에서는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천 년 전에 지어진 오래된 성당에서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종소리와 찬송 소리가 울려 퍼지는 장면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천 년은 고사하고 몇십 년 전에 지어진 집이라도 문화재로 지정되고 나면 그 집은 ‘보존’되기 시작한다. 곳곳에 “들어가지 마시오” “손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은 채 때로 유리 벽이 서있고 사람들은 그저 유리 벽 너머에서 잠시 구경을 하다가 돌아설 뿐이다.
집이란 본디 사람이 살던 곳인데, 보존이라는 명목 아래 그저 박제로 만들어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래의 모습과 가깝게, 정말로 그곳에서 지금도 바로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복원하는 추세에 있다. 일례로 덕수궁 석조전은 오랫동안 미술관으로 사용되었지만, 원래는 대한제국의 궁전이었다. 최근 이를 다시 본래 모습에 맞추어 복원했다. 2층에는 고종황제와 엄비의 침실, 서재, 드레스룸, 화장실과 욕실까지 모든 것이 당시의 모습과 가깝게 복원되었다. 그리고 최근 또 하나의 집이 복원되었다. 1923년 종로구 행촌동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 ‘딜쿠샤’이다. 딜쿠샤란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로, 그 집의 안주인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백여 년 전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던 이는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 가족으로, 일찍이 조선에 들어와 사업을 했던 사람이자 3·1운동과 일제의 제암리 학살 사건을 외국에 널리 알린 통신원이기도 했다. 그는 1923년 이 집을 짓고 1942년 추방령이 내려질 때까지 이십 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았다. 붉은 벽돌로 지은 지하 1층~지상 2층의 집으로 19세기 영국식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영국식 주택은 1층에는 서재, 응접실, 손님 초대용 식당 등 공적인 영역을 두고, 2층에는 침실과 자녀 방 등 사적인 영역을 둔다.
라는 말이 있을 만큼, 영국인은 집을 중요시한다. 앨버트 테일러는 마치 성을 쌓듯 벽돌을 하나하나 올려 집을 지었고,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는 그 집을 어여쁘게 꾸몄다. 뿐만 아니라 내부에는 가구, 탁자, 의자를 비롯한 각종 소품을 적재적소에 두어 안주인의 안목도 드러내었다.
부부는 어린 아들 브루스를 키우며 행복했지만 1941년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모든 미국인에게 추방령이 떨어진다. 테일러 가족도 떠나고 딜쿠샤는 빈집으로 버려지게 된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딜쿠샤는 대한민국 정부의 소유가 되었지만 이렇다 할 조치 없이 방치되었고, 우선 급한 대로 난리 통에 집을 잃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세월이 흘렀다가 2006년, 그 집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살았던 브루스 테일러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그 집이 본래 딜쿠샤였음을 세상에 알린다. 그 후 서울시와 정부는 딜쿠샤를 본래 모습대로 복원하여 2020년 세상에 공개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복원 과정에 참여했던 최지혜 교수가 복원 과정의 이야기와 당시의 시대 배경을 잘 버무려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앞서 덕수궁 석조전을 복원하는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던 최지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근대건축 실내 재현 전문가이다.
조선에 살았던 서양인이었기에 실내에는 서양식 가구와 일본, 중국, 조선 등에서 수집한 동양적인 소품들이 함께 있다. 자칫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는 실내는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탁월한 안목으로 인해 정말 잘 어울리고, 100여 년 전의 주택 모습은 복원 전문가 최지혜 교수의 안목으로 더욱 우아하게 재탄생했다. 실내에 사용된 식탁보, 카펫, 찻잔과 병풍 등은 아들 브루스가 제공한 빛바랜 사진을 통해 꼼꼼하게 재현되었고, 그 과정을 총괄했던 최지혜 교수의 이야기가 더해져 빈집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현재 딜쿠샤는 보존을 위해 너무 많은 관람객을 받지 않고, 예약을 통해 정해진 인원에게만 관람을 허용하고 있다. 자칫 예약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책으로 만나보는 게 어떨까. 전등 하나, 카펫 한 장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으니까.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은 물론 외출조차 쉽지 않은 세상에서, 책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100년 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테일러 가족의 초대를 받아 기쁨의 궁전 딜쿠샤로 떠나보자.
서윤영_건축칼럼니스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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