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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열정을 쏟는 이에 대한 예찬

by 행복한독서

꽃에 미친 김 군

김동성 글·그림 / 52쪽 / 30,000원 / 보림



이 작업의 시작은 갑자기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나 어떤 외부의 자극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덕후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계속 쌓이던 중 자연스레 김덕형이라는 인물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첫 창작 그림책의 소재로 연결되었습니다.


평생 꽃에 빠져 살았던 18세기 실존 인물 김덕형이 그림책 『꽃에 미친 김 군』의 모델입니다. 그에 대해 전해지기로는 규장각 서리를 했었고 꽃 그림에 매우 능통했다고 하는데 그 외에는 어떤 활동을 했고 남겨진 작품이 무엇이고 언제 죽었는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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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황, 김홍도, 심사정, 최 북 등 당대 화단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모임도인 「균와아집도」에 13세의 어린 김덕형이 묘사된 것이 유일한데, 한 분야에 관한 남다른 깊은 애착과 헌신으로 나름의 일가를 이룬 사람의 약력으로는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로 빈약한 기록입니다. 김덕형의 꽃에 대한 지나친 편벽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거의 미치광이로 취급되어 조롱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일반적이지 않고 특이하다는 것,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서나 돌연변이를 보는 듯한 굴절된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만큼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였고 꽃 그림의 대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비록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고 입신양명이나 출세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문화적 다양성이 억압되고 제한되었던 엄혹한 시대에 그런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어 자신이 좋아했던 꽃을 통해 자기애를 실천한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이런 김 군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남다른 열정을 다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고 그러한 문화가 존중받는다면 세상은 좀더 풍성하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그림책 『꽃에 미친 김 군』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예찬하기 위해 만든 작품입니다.


김 군은 김덕형을 낮추어 일컫는 말로 연장자인 박제가가 쓴 『백화보서』에 실린 김덕형에 대한 일종의 애칭입니다. 이렇게 익명화된 존재는 작업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가상의 시공간, 수수께끼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설정할 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여지의 폭이 크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팔꽃의 개화를 목격하고 꽃의 매력에 빠져드는 첫 만남의 에피소드나 후반부에 꽃 그림을 그리면서 결국에 꽃이 되는 판타지 엔딩도 김덕형의 미스테리적인 캐릭터와 어울려 특별한 이질감 없이 이야기에 동화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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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연관되어 이 작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꽃입니다. 아마 제 일생에서 가장 많은 꽃을 그린 작업이 아닐까 할 정도로 다양한 꽃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꽃은 사람이나 동물과 달리 얼굴이 없기 때문에 감정이나 표정을 잡는 것이 어려운 대상입니다. 슬픈 분위기의 꽃 그림과 밝은 분위기의 꽃 그림은 당연히 달라야 하지만 꽃의 이러한 성질 때문에 각각의 분위기에 맞는 연출을 하기가 까다롭습니다. 꽃 구경은 즐거운 유희지만 꽃을 그리는 것은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늘 강박관념처럼 가진 저에게 이번 작업은 시종일관 고통의 회오리였고 통곡의 쓰나미였습니다. 특히 파노라마 형식으로 펼쳐지는 대문접지 장면은 장면 설정 자체가 독자의 어떤 특별한 감정을 유도하는 연출이고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놀라운 비주얼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고 거의 한 달이나 걸려 작업했지만 마음에 안 들어서 완전히 다시 그려야 했던 장면이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 작업을 하다 보면 그리기 어렵거나 까다롭게 생각되는 대상을 숙명적으로 맞닥뜨리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고 그저 독자의 입장에서 자연스레 김 군으로 감정이입이 될 수 있도록, 장면 장면의 꽃 그림이 어색하지 않도록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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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어떤 것 하나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열심인 것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삶은 충분히 행복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주 작고 볼품없거나 다른 이에게는 황당하고 이해 안 되는 엉뚱한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을 담아 정열을 다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진정 아름답고 인정받아야 마땅합니다.


세상에 미치치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은 많지 않습니다. 학문도 예술도 사랑도 나를 온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저마다의 김 군이 한 명씩 자리하기를 바랍니다.


김동성_그림책작가, 『꽃에 미친 김 군』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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