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남해에서의 아홉 번째 봄입니다. 사실 저는 봄맞이가 유독 늦은 편이에요. 계절을 많이 타서 그런지 봄이 성큼성큼 다가올 때도 아직 몸과 마음은 겨울에 있을 때가 많답니다. ‘좀만 더 누워있다가 일어날래…’ 하면서 눈만 끔뻑거리다가, 조금 힘이 나 벌떡 일어나보면 봄은 이미 저 멀리 뒷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짧은 봄, 아쉬운 봄. 이 글이 여러분께 닿을 때도 이미 봄은 과거형이 되었겠습니다.
이번 봄에는 계획에 없던 이사를 하게 되어 무척 분주했습니다. 이사업체를 부르지 않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고양이 네 마리를 데리고 일주일 동안 천천히 짐을 옮겼어요. 무리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밤낮없이 짐을 싸고 풀고 정리하다 보니 온몸이 너덜거리더라고요. 이사 준비를 한다고 식재료들을 거의 다 소진한 탓에 냉장고는 텅 비었고 음식을 해 먹을 힘도 없어서 매 끼니 간편식으로 대충 때우고 있을 때, 서울에서 엄마가 왔습니다.
엄마 말로는 완도 할머니 댁 가기 전에 꽃놀이도 할 겸 들렀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이사한 딸내미가 밥은 안 굶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나 봐요.
나의 농담에도 굴하지 않고 작은 배낭에서는 알배추와 양념 속, 사과, 천혜향, 견과류, 조미료가 나왔습니다. 엄마는 맛있는 한 끼를 뚝딱 해내더니 저녁엔 맛있는 걸 먹자며 한우까지 사 왔어요. 그런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꽃놀이 투어 시켜주기, 시답잖은 말장난으로 계속 엄마 웃기기, “이 책 재밌어” 하고 읽던 책 건네기 정도뿐이었습니다.
엄마와 짧지만 단란한 이틀을 보낸 뒤, 할머니를 보러 갔습니다. 세 살 때까지 완도에서 자라서 제 영혼의 일부는 여전히 거기 있다고 믿는데요. 같은 남쪽이라 남해에 오면 자주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차로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이더라고요. 그래서 꽤 오랜만에 삼대가 모이는 날이 되었습니다.
반가움도 잠시, 할머니는 우리가 오자마자 볼멘소리입니다.
엄마가 도매상에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가격 책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답변을 듣고 난 뒤에도 할머니의 파 타령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대야에 한가득 만들어놓은 고추장을 쥐들이 훔쳐먹은 것 같다는 이야기는 아침저녁마다 했고, 갯것(바지락, 뻘게 등 갯벌에서 나는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 하러 간다는 엄마에게 “아직 추워서 기(게) 안 나온다”는 말은 열댓 번 정도 재방송했습니다.
다 큰 손녀는 이제 관심 밖인지, 내 이야기를 좀 할라치면 아주 큰 소리로 지르듯이 말해야 겨우 알아듣는 할머니. 그러다가 또 삼천포로 빠져 결국 파, 쥐, 게 이야기로 돌아오는 우리 할머니. 그래도 할머니에게 아쉬운 소리는 한마디도 할 수 없어요. 여든일곱 해 평생 밭과 바다에서 성실히 보낸 덕분에 할머니 집에만 오면 먹을 것들이 넘쳐나니까요. 상추, 배추, 쑥갓 등 밭에서 툭툭 뜯어온 채소들을 씻고, 양념해 둔 고기를 휘리릭 볶아내면 쌈밥 한 상이 금세 차려집니다.
푸짐한 점심을 먹고 까무룩 낮잠을 자고 일어나자, 엄마는 할머니의 만류에도 갯것을 하고 싶은지 바다에 나가본다고 합니다. 나도 산책 겸 따라나섭니다. 마을 아래 삼거리를 지나는데 뒤에서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납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치즈 고양이 한 마리가 졸랑졸랑 걸어오지 뭐예요. 오른쪽 귀가 조금 잘려있고, 털도 아주 보드랍습니다. 분명 녀석을 지극하게 챙기는 어르신이 있는 거겠죠. 산책을 실컷 하고도 녀석은 돌아가려 하지 않았어요. 할머니 집 안까지 쫓아오는 걸 두 번이나 말리고 본거지인 어르신 댁까지 데려다준 다음에야 긴 산책이 끝났습니다. 고양이와 발을 맞춰 걷는 산책이라니. 글로 적으면서도 비현실적일 정도로 평화롭고 동화 같은 순간이었어요.
할머니 댁은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곳이라, 저녁이 되면 할 일이 더 없어져 별수 없이 엄마와 함께 책을 읽었습니다. 엄마가 읽다 잠들면 내가 읽고, 아침에 내가 늦잠을 자면 엄마가 읽고 하는 식으로요.
“엄마 덕분에 할머니는 틈틈이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할머니와 엄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은 책을 읽는 일은 둘 사이의 얼마 되지 않는 애정 표현이었다.” (최은영, 『밝은 밤』 311쪽)
4대에 걸쳐 내려오는 사랑 이야기를 완도에서 읽게 될 줄이야. 아끼는 작가의 책이었음에도 한참을 미뤄놓다 읽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을까요. 특히나 이렇게 지금 상황과 꼭 닮은 소설 속 구절을 발견하니 더 반가웠습니다.
다음 날, 할아버지 산소에 갔다가 짧은 인사를 드린 뒤 다시 남해로 향합니다. 돌아오는 길은 일부러 국도로 돌아서 왔어요. 벚꽃과 꽃나무들이 지천으로 어우러진 봄의 길을 만끽하며, 천천히 가야 볼 수 있는 풍경을 누렸습니다. 완도의 시간은 늘 남해의 시간보다 느리게 흐릅니다. 자꾸 조급해지려고 할 때마다 이 시간이 나를 불러 세워요. 지금 잘하고 있다고, 이게 맞다고, 너 하던 대로 천천히 가라고 말이에요. 엄마와 할머니 덕분에 기어코 짬을 내 다녀온 완도에서 생명력이 폭발하는 절기, 청명을 맛봅니다.
“‘이게 사는 건가’와 ‘이 맛에 살지’ 사이에는 모름지기 계획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다. 제철 행복이란 결국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가는 일.” (김신지, 『제철 행복』 85쪽)
이렇게 어떤 책들은 시기를 딱 맞춰 내 앞에 도착합니다. 나와 만나기 위해 이제껏 기다렸다는 듯이, 지금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듯이. 엄마와 제철 꽃놀이하기. 할머니, 할아버지 찾아뵙기.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던 나만의 제철 숙제들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행복할 수는 없겠으나 사소하면서도 귀한 장면들이 스쳐 갈 때 부디 놓치지 않기를. 어디서든 제철 행복을 누리고, ‘이 맛에 살지’ 외치며 작은 기쁨을 살뜰하게 챙기기를. 그리하여 또다시 새로운 싹을 틔울 힘을 얻길 바라며, 남쪽에서 안부 전합니다.
박수진_아마도책방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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