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과 안녕 사이의 시간 동안

by 행복한독서

별에게

안녕달 글·그림 / 64쪽 / 16,800원 / 창비



문학에서 ‘별’은 다양하게 은유 된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처럼 별을 보며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고 신화 속 영웅서사를 별자리로 재현하며 때로 인간과 별의 대비를 통해 인간이 서있는 자리를 성찰하기도 한다. 안녕달의 그림책 『별에게』에서 ‘별’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가 그림책 출간 10년을 맞아 펴냈다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의 필명인 ‘안녕’과 ‘달’이 가진 의미와 연결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안녕달의 그림책에는 의인화된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당근 유치원』의 유치원생 토끼와 곰 선생님, 『당근 할머니』의 토끼 할머니와 돼지 손자는 아동문학에서 자주 활용되는 의인화 방식으로 다양한 존재 간의 만남과 돌봄을 이야기한다. 『눈아이』는 눈사람의 속성을 빌려 짧은 만남과 긴 이별 그리고 뜻밖의 반가운 재회를 보여주었고, 『안녕』에는 소시지 할아버지와 개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인연을 담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별을 하나의 생명체로 형상화한다.


이야기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초등학생 아이가 하굣길에 밤바다에 떨어진 별을 모아 바구니에 담아 온 할머니에게 별을 얻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어른들은 이 장면을 보며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팔던 노란 병아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새 학기가 되면 교문 앞에서 병아리를 팔곤 했고 용돈을 털어 산 그 병아리들은 아무리 정성껏 보살펴도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에서 별은 건강하게 자란다. 엄마와 아이는 아기별이 달빛을 받아야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별을 무럭무럭 키우기 위해 밤마다 별과 함께 산책을 하며 정성을 다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라며 별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우리는 모녀가 별과 한 가족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별과 함께 자란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 수학 시험을 망치고 친구들과 떡볶이 가게에서 수다를 떠는 동안에도 그리고 청년이 되어 육지로 떠난 뒤에도 별은 언제나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육지로 떠난 후 별을 돌보는 일은 오롯이 엄마의 몫으로 맡겨진다. 섬에 남은 엄마와 별은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엄마가 낚시를 하거나 이웃과 귤을 따는 동안 별은 엄마 곁을 다정히 지킨다. 아이와 엄마와 별이 함께 보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어느 날 엄마는 육지에서 생활하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와 봐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하고, 전화를 끊은 엄마는 별에게 속삭인다. “조금만 기다려. 누나가 올 거야”라고. 이제 별이 보름달만큼 커져 하늘로 올라갈 시간이 된 것이다. 모녀는 별에게 “안녕” “잘 가”라는 인사를 보내고 아기별은 커다란 별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모녀는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수많은 별 중에 자신들의 별을 발견하여 기뻐하고 별은 하늘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힘차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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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들의 가족이 되었다가 하늘로 떠난 별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곁에 머물다 떠난 돌봄과 반려의 존재들을 떠올리게 된다. 작품은 아동문학에서 주로 의인화되던 동물이 아닌 별을 등장시켜 따뜻한 빛깔로 독자들의 마음을 밝혀주고, 직관적으로 별이 가진 상징도 전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플롯에 기대자면 ‘함께 살던 존재’가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슬픈 이별의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대상이 ‘별’이기에 별이 하늘에서 빛나는 장면을 통해 존재가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달된다. 우리는 흔히 한 존재가 사라지면 본향으로 돌아갔다고 말하면서도 눈앞에서 사라지기에 내심 소멸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하늘에서 떨어졌던 별이 커다란 노란 별이 되어 하늘로 회귀하는 모습은 땅에 잠시 머물던 존재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처럼 혹은 이전보다 훨씬 귀한 존재로 거듭나 새로운 별자리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시간적 존재’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연속을 지나며, 이 시간성을 통과하는 중에 존재의 의미가 산출된다. 그리고 존재의 의미는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이 만날 때 발생한다. 그림책에서 아이는 청소년과 청년으로 성장하고, 엄마는 젊은 여성이었다가 중년과 장년이 된다. 별 또한 아기별이었다가 보름달만큼 환한 큰 별로 자란다. 그들은 각자의 시간을 통과하는 어느 한 시기에 엄마와 딸, 딸과 엄마 그리고 별의 반려자로 관계를 맺는다. 우리의 시간이 엮일 때 우리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안녕’이라는 우리말이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모두 사용되듯이 우리는 만남에서 이별까지의 시간, 즉 ‘안녕’과 ‘안녕’ 사이의 시간 동안 누군가와 기억을 쌓으며 자신을 만들고, 별이 그랬듯이 달이 보내는 따뜻한 기운을 받으며 성장한다.


저마다의 시간의 교차로에서 만났던 우리는 언젠가는 이별하여 남은 이와 떠난 이가 된다. 이 작품의 제목 ‘별에게’는 남은 이가 멀리 있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의 첫 소절처럼 다정하게 들리는데 그것은 시 「별 헤는 밤」에서 화자가 별을 보며 그리운 이름을 부르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안녕달의 작품에서 의인화가 모든 존재의 공존을 의미했다는 점에서 보자면 어쩌면 별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별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던 모든 생명의 이름 같기도 하다.


그러기에 안녕달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이별의 뮈토스에는 슬픔을 넘은 따뜻함이 만져진다. 우리 곁에 함께했던 존재와의 이별은 슬프지만 그 이별의 단어를 풀어보면 그 속에 슬픔뿐 아니라 그리움과 사랑과 추억과 웃음이 모여있음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존재가 사라져도 함께했던 기억이 남은 이를 지켜준다는 성찰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햇살이 묵묵히 머물다 지나간 자리에서 만져지는 따뜻함이다.


오세란_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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