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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장소에서 만나는 근현대사 14코스

by 행복한독서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문재옥 글 / 248쪽 / 17,000원 / 풀빛



1863년 고종 즉위 후 흥선대원군의 집권부터 오늘날 2025년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주제로 서울, 인천, 경기도 일대를 답사하는 흥미로운 구성 속에 현직 도슨트와 함께 걸어 나간다. 1장에서 강화도와 인천 개항장 일대를, 2장부터 6장까지는 서울에서 구역을 나누어 가까운 지역은 물론 동일한 주제를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구역으로 설정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책의 서막을 알리는 첫 주제 강화도에서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조약이라는 우리나라 근대의 시작을 알린 사건들을 연대기순으로 돌아볼 수 있다. 갑곶돈대, 외규장각, 정족산성 순으로 발길을 옮길 때마다 현직 도슨트의 풍부한 설명이 더해지며 해당 장소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같은 장소를 다른 테마에서 다룬 것도 인상적이다. 즉, 같은 장소에서 두 가지 역사적 현상을 중첩해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울 북촌은 2장 ‘근대화의 현장’과 4장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모두 다루고 있기에 갑신정변의 현장인 우정국 일대를 둘러보며 근대화의 현장을 살펴보고 우정국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멀지 않은 곳에 3·1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태화관 터에 자리한 태화빌딩에 도착하여 독립운동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스쳐 지나갈 법했던 한 장소에서 여러 가지 역사적 현상을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근대-국권 피탈-일제강점기-현대라는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이 책을 덮고 눈을 감았을 때 마치 근현대사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이다. 시간 여행을 하고 싶은 독자들은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원하는 테마를 보고 페이지를 펼쳐서 관심이 가는 지역을 먼저 읽어보고 직접 답사해 봐도 좋다. 지금 서울에 있다면 이 책을 펼쳐놓고 가까운 곳에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유적지들이 있는지 펼쳐서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활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근현대사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독자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 책은 역사적 설명 속에서도 중간중간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독자들을 지루하지 않게 쉽게 역사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앙리 쥐베르의 『조선원정기』에 우리나라가 가난한 집이라도 집 안에 책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한 부분을 인용하고 이를 토대로 ‘당시 프랑스군은 요즘의 파리지앵이 아니었다. 문맹자들이 너무 많았다’라고 곁들이는 서술 방식은 재미있는 현장 설명을 듣는 느낌이 든다. “현장에서 역사의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은 책으로 읽고 떠올려 보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라는 저자의 말 속에서 역사의 현장을 직접 걸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이것이 답사가 주는 특별함이자 중요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런 역사적 지식 없이 답사를 나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책을 가지고 우리가 늘 걷던 길이었던 일상적 장소이자 역사적 장소로 나가보자! 그곳에서 책 속에서 펼쳐졌던 우리의 근현대사를 쉽게 그리고 생생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박상은_남양주 마석고 교사, 『세계시민을 위한 없는 나라 지리 이야기』 공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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