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몽고메리 지음 / 맷 패터슨 그림 / 조은영 옮김 / 412쪽 / 20,000원 / 돌고래
다리가 부러지고 눈은 하나가 없다. 턱이 어긋나 있으며 온통 흉터투성이인 몸. 그런 손상이 소중한 삶을 앗아가지는 못한다. 어떤 상처와 손상에도 자신의 삶을 차분히 살아가는 존재는 ‘패배하지 않은 존재’이다. 거북의 이야기다.
거북은 머리가 잘려도 5일 동안 심장이 뛰고, 장시간 심장이 뛰지 않아도, 몇 달 동안 호흡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사는 거북은 어떤 고통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다고 자연사하지 않는 거북, 그래서 영원히 사는 존재.
거북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느리지만 꾸준히 걸어 토끼를 앞서는 거북, 자기의 속도대로 살 줄 알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북. 느릿느릿 움직이고 그래서 모든 것을 차분하게 인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존재를 인간은 오래전부터 지혜로운 동물로 여겨왔다. 오래 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손상에도 회복할 줄 아는 지혜, 영원히 살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늦출 줄 아는 거북의 지혜. 그러니까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혜로운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등딱지가 반 넘게 뜯겨도 살아남는 이 지혜로운 철학자, 영원히 사는 거북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 것처럼’ 사라지고 있다. 달리는 차에 치여서, 배딱지가 암을 고친다는 헛소문 때문에, 제초기에 등딱지가 부서지고, 순진한 아이들은 거북의 산란지를 망가뜨린다. ‘적대적인 세상에서 억겁의 세월’을 버텨왔지만 차량과 밀렵, 서식지 파괴와 기후위기로 수많은 거북과 수없이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멸종해 간다.
다행히 거북을 살리려는 사람들, 지혜와 소중한 일상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거북의 등을 접착제로 붙여주고, 알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는 사람들. ‘앞으로 한 세기 넘게 살 수 있는 생물’이 죽게 될까 봐 조심스럽게 알을 옮기는 손길들, 거북이 회복할 때까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살리고 치료하는 사람들은 어디로든 길을 만들어내고, 어떻게든 희망을 찾아낸다. 나도 그들을 따라 생명을 보는 시선이 조심스러워지고 회복의 시간이 필요한 모든 존재들에게 자꾸 마음이 쓰이는 게 느껴진다.
작가 사이 몽고메리는 거북을 돌보는 사람을 보며 ‘거북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 거북의 시간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거북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 말은 다른 존재의 고통과 아픔을 느낄 줄 안다는 말 같았고 이해와 연민, 사랑과 다르지 않은 말로 들렸다. 천천히, 자기 속도대로 살아가는 거북과 그 거북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시간. 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 역시 거북의 시간에 살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빠르게 돌아가는 문명의 시계가 아니라 다른 속도를 희망하게 된다.
모든 시계가 생산과 소비에 맞춰 돌아가는 시대, 연민과 사랑이라는 말이 오염된 시대. 정신없는 속도와 오염된 말에 상처 입은 존재들, 정신없이 굴러가는 삶을 멈추고 싶은 존재들과 함께 읽으며 망가진 세상을 회복하는 상상을 해보면 좋겠다.
정윤영_르포 작가, 『동물의 자리』 공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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