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봄에 영업시간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7년 동안 책방을 운영하면서 영업시간을 다양하게 해봤는데 그때마다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영업일이 많아야 손님이 오지 않을까 싶어 영업일을 늘리면 눈에 띄는 변화는 보이지 않았고, 힘들어서 영업일을 줄이고 휴무일을 늘리면 손님이 없는 게 괜히 영업시간 때문인가 싶어지곤 했습니다. 마음이 오락가락하니까 영업시간도 오락가락할 수밖에요. 안정적인 루틴을 잡아 일은 짜임새 있게 하고 일상은 정돈하고 싶은 바람은 한 해 한 해 지나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이번에는 우연한 계기로 우왕좌왕하는 마음을 평정할 기준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밥을 잘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자.’ 저녁밥 때를 넘겨 영업을 마감하니 야식과 폭식이 잦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그전까지는 책방에서 어떻게 냄새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어떤 메뉴가 속도 채우고 영양도 채울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작은 공간을 운영하는 일인 자영업자의 이 정답 없는 고민이 밥을 잘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자는 다짐으로 바뀌어 영업시간을 수월하게 변경했습니다. 이제는 저녁 6시에 마감하고 퇴근해서 밥을 차려 먹습니다. 아침 겸 점심은 출근 전에 먹고요. 물론 매출 걱정에 불안할 때도 있지만 저녁밥을 먹고 산책을 할 때면 흡족한 마음이 들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밥을 잘 먹으려고 애쓰는 일이 우스운 게 아니라고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조카 때문입니다. 세 살 조카가 편식이 심하고 밥을 잘 안 먹어 모든 가족이 걱정하는데, 어느 날 동생이 조카에게 밥을 먹이면서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밥 좀 잘 먹자”라고 장난치듯이, 애원하듯이 이야기할 때 옆에 있었습니다. 참 평범한 말인데 그날따라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생의 초반에는 밥을 잘 먹기를, 아프지 않기를, 잠을 잘 자기를 정도입니다. 그냥 바라는 게 아니라 정말 간절히 바라죠.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 바라는 것이 점점 늘어납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부모님 말도 잘 듣고 친구도 많고 세상에서 인정받는 학교와 직장에 들어가고 돈도 많이 벌기를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잘 먹고 잘 자고 화장실에 잘 가는 거라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평화롭지 않을까요?
잘 먹고 잘 자고 화장실에 잘 가는 것은 한두 가지만 고치면 되는 게 아니라 삶을 전반적으로 잘 가꾸어야 가능합니다. 이런 가꿈은 자기계발과 달리 나 자신을 넘어 타인에게도 향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을 우리는 ‘돌봄’이라고 부릅니다.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 두 권을 이런 돌봄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더 흥미로웠습니다.
『우리, 나이 드는 존재』는 ‘나’를 돌보는 아홉 명의 이야기입니다. 정수윤 번역가는 “인간이 자기 육체에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을, 나는 수영을 하면서 내게 하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좋아하는 운동이 생겨서 그 운동을 오래오래 더 잘하고 싶어 나의 몸을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다고요. 김하나 작가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이 앙다문 조개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호기심을 연마하고 ‘나를 열어두는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는 새해마다 '새롭게 죽을 결심’을 한다고 합니다.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면 내가 좋아하는 일상, 옳다고 여기는 대의, 누구를 더 사랑하고 돌볼지, 어떤 일에 집중할지 정리”할 수 있어서요.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우리가 더 안전하고 즐겁게 나이 들어가려면 더 많은 몸에 대한 서사가 필요하다. 몸에 대해 말하기는 그 자체로 힘이 있다”라고 합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나를 돌보는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반짝이고 있는 아홉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저 자신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나이 드는 존재』가 자기를 잘 돌보는 이야기라면 『숲을 읽는 사람』은 식물을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이 그 돌봄을 통해 자기도 돌봄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일을 ‘식물의 말을 사람의 언어로 옮기는 초록의 일’이라고 표현하는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의 글을 읽으면서 잘 나이 드는 방법에 수천 가지가 있지만 그중 제일은 깊이 사랑하는 대상이 있고 그것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는 사람, 즐겁게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물만 바라보고 사는 딸을 염려하는 엄마를 떠올리며 작가가 속삭이는 부분은 사랑 고백 같기도 합니다. 돌봄은 돌고 도는 거라 돌봄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엄마, 나는 식물들 옆에 있으면 기쁘고 행복해. 사람들 사는 세상에서 하는 고민과 걱정은 안 하게 되거든.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어. 이게 살아 있는 거구나 싶어. 식물을 만나고 돌보는 일이 내게는 일종의 자기 보호야.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어서,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어서. 엄마가 만사 잊고 나를 반기는 것처럼 나도 그래, 식물들한테 말이야.” (허태임, 『숲을 읽는 사람』 194-195쪽)
모두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화장실 잘 가고, 많이 사랑하는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 돌봄이, 사랑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거예요.
홍지영_다즐링북스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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