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외 10인 지음 / 328쪽 / 22,000원 / 메디치미디어
내 직장이기도 한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은 전쟁으로 돈벌이를 하는 무기 산업이 전쟁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생각으로 무기의 생산, 판매, 사용 등을 감시하고 때때로 이를 막아서는 직접행동을 한다. 바레인에서 한국산 최루탄으로 수십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최루탄이 수출되는 것을 막는 캠페인을 해 수출을 막았다. 그다음에는 튀르키예로 해당 수류탄이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또한 막았다. 하지만 무기 사용으로, 전쟁으로 날마다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이렇게 하나하나 대응해서는 이 죽음을 막을 수 없다고 느끼고는 무기가 거래되는 시장 그 자체의 상징인 무기박람회에 저항하는 캠페인을 펼치게 되었다.
감히 비교해 보자면 의사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도 우리 평화 활동가들이 느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한다는 점에서 의사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이 더 클 것이다. 우리는 사람 죽이는 무기 수출과 사용을 반대하지만 많은 경우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지는 않으니까.
실제로 루쉰이나 체 게바라처럼 사람을 죽게 만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메스를 드는 대신 펜을 들거나 혁명에 나선 이들도 있지 않은가.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사, 간호사, 약사들이 쓴 책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저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나이지리아에서 활동한 소아과 의사 신경수는 마이클 마멋의 책 『건강 격차』의 문장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들이 무력감을 딛고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때문인 것 같다.
우선 살려야 할 눈앞의 환자가 너무 많아서. 이들을 살리는 데 집중하다 보면 수개월의 파견 기간이 끝나곤 한다. 부족한 의약품, 낙후된 의료시설, 적절한 치료를 가로막는 잘못된 의료 상식과 의료 행위에 대한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거부감, 심각한 위생 환경이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눈앞에 환자가 실려 오면 살리고 봐야 하고, 환자들의 죽음조차 슬퍼할 여유 없이 다음 환자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저자들의 문체나 서술이 굉장히 건조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감정보다는 일에 집중해야만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또 하나,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이 가능한 전문직임에도 왜 위험천만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백하게 “나는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이 좋다”(문소연)고 말할 뿐이다. 사명감, 대의, 헌신 같은 숭고한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단순한 말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렸다. 나도 내 일을 좋아하니까. 좋은 일이라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이라서 나도 평화운동을 하는 거니까.
이용석_전쟁없는세상 활동가, 『평화는 처음이라』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