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글·그림 / 40쪽 / 17,000원 / 이야기꽃
어쩌다 뉴스 화면이나 웹사이트에 땀범벅이 되어 달리는 마라톤 행렬이 보이면 눈을 떼지 못합니다. 도로 가득한 저 많은 사람들이 그저 달리기 위해 모여있다니! 오직 달리고 또 달릴 뿐이라니! 그걸 보면서 ‘달리고 싶다!’고 번번이 외치는 자신이 정작 수십 년째 하프코스 도전조차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 놀랍습니다.
누군가 달리는 모습에 자극된 뇌 반응이 마라톤대회를 검색하고 참가 신청서를 접수하고 운동화 끈을 묶는 시점을 촉발하기까지에는 어떤 동력이 필요할까? ‘달리고 싶다’와 ‘달린다’ 사이의 엄청난 간극은 어떻게 좁힐 수 있나? 이런 고민을 짬짬이 해온 이 앞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림책이 있으니, 이진경의 첫 그림책 『나의 속도』입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언젠가부터 뭔가를 궁금해하거나 고민하고 있으면 여지없이 해답을 건네는 그림책이 눈앞에 뚝 떨어지곤 합니다.)
표지의 능란한 검정 잉크 드로잉이 그려 보이는 주인공 청년 여성, 그의 달리는 옆얼굴은 필사적이기보다 결연해서 두툼한 손과 잘 어울립니다. 이는 그다음에 펼쳐지는 앞 면지의 운동화 끈을 죄는 손이면서,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게 해줍니다. 그 오른쪽 페이지의 한 줄 텍스트 “시작하는 친구들에게”는 의연하고 다정합니다. 속표지를 넘기면, 노란 셔츠의 주인공이 준비운동 하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엉거주춤 서있어요. 그 발 아래에서, 다정한 말투의 속삭임이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책의 글은 내레이터가 조곤조곤 마음을 다해 격려하고 응원하며 주인공이 자기의 속도를 깨닫고 즐기도록 속삭여주는 말입니다. 그림은 달리기 전의 주인공과 달리는 주인공, 그와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고요. 독자도 주인공을 따라 달릴 수밖에 없는 ‘달리는 그림책’입니다.
‘달리는 사람’에 대한 그림책은 드물고, 달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그려진 마라톤 그림책은 더욱 드뭅니다. 글과 그림의 16장면 서사로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이야길 하기 힘든 탓입니다. 이즈음 어린이의 위상과 마라톤 열풍 덕분에 ‘키즈 러너’라는 용어가 생겼지만, 무엇보다 그림책의 주요 독자 어린이에게 장거리 달리기는 공감하기 힘든 운동이니까요.
마라톤 완주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AI에게 물었습니다. “러닝화, 수분 보충 음료, 보온 통풍이 좋은 러닝복, 그리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요. 믿을 만한 응답에, 저도 바로 그 마음가짐에 유익한 이 그림책 『나의 속도』를 추천했습니다.
이상희_시인·그림책 작가,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 이사장, 『그림책 속으로』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