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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말고 그냥 ‘나’로 살기

by 행복한독서

나는 문어

서수인 글·그림 / 48쪽 / 17,500원 / 위즈덤하우스



커다란 조개 엄마는 열심히 태교하며 뱃속에서 아기 진주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린다. 아기에게 바라는 건 없다.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기를.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아기 진주를 만난다. 매끈하고 동글동글하지만 어딘가 흐물거리는 아기 진주.


아기 진주는 무럭무럭 자라 진주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동글동글하고 멋진 진주가 되는 걸 목표로 하는 진주 학교는 새하얀 피부에 동그랗고 커다랗게 성장하도록 교육한다. 무엇이든 쉽게 해내는 친구들과 달리 아기 진주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 다른 친구들처럼 온몸을 동그랗게 말아도 보고 반짝반짝 빛나기 위해 미역으로 문지르기까지 했는데 다리는 꼬이고 피부는 미역 색만 흡수해 초록색으로 변하고 만다. 그러다 크기가 클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진주가 되기 위해 크게 호흡하는 훈련을 하던 중 사고가 터진다. 아기 진주가 숨을 참지 못하고 뱉자, 그의 입에서 검은 먹물이 튀어나온 것. 교실은 온통 검게 물들고 친구들도 까맣게 변했다. 그렇다. 주인공은 진주가 아니라 진주와 동그란 머리만 닮은 문어였다.

그림3-나는문어_본문.png

진주가 되기 위해 애를 쓰는 문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았을 법도 한데 『나는 문어』 속 주인공은 다르다. 그 지점이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다. 상처받고 의기소침해지기보단 흐물흐물하게 늘어지는 다리와 강력한 빨판을 자랑하며 “나는 내가 정말 좋아”라고 외친다. 문어의 매력은 예쁜 진주가 되기 위해 함께 애쓰던 친구들까지도 변화시킨다. 친구들도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않고 도와준다. 이야기를 극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무리하게 악역을 만들지 않아 편안하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간결하면서도 유쾌하다. 그 유쾌함을 배가시키는 건 매력 넘치는 캐릭터와 만화식 구성이다. 페이지의 구석구석까지 캐릭터를 배치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극적인 연출이 이야기의 재미를 더 극대화한다.


또 세상에 눈을 뜬 아이 중심의 서사지만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개 엄마가 주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문어는 진주 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름을 인지하게 된다. 우리도 가장 먼저 접하는 큰 사회가 학교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내가 아닌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겪어봤다. 진주가 되려고 애를 쓰던 문어가 남 같지 않다.


말랑말랑하고 유연하며 담는 그릇에 따라 자유롭게 모양이 바뀌는 문어.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어울린다. 남들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내가 좋다고 말하는 문어의 당당함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며 용기와 희망을 전한다. 진주가 아니어도 빛날 수 있음을 우리는 문어를 보며 배운다.


남우정 기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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