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룬드베리의 그림책은 익숙한 세계와 우리가 완전히 인식하지 못했던 원초적 세계를 잇는 은밀한 통로처럼 작동합니다. 두 세계의 조우는 조용하고 느닷없이 이루어지며, 그 순간 잠들어있던 감각이 깨어나면서 새로운 차원의 신화가 열립니다. 이 전환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는 깨닫습니다.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변화했다는 것을요. 룬드베리의 이야기는 성장 서사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존재의 껍질을 벗고 본연의 자아를 마주하는 전환의 과정이 자리합니다. 통제된 세계를 벗어나 길을 잃고, 미지의 자연과 타자, 낯선 자아와 조우한 뒤 다시 일상의 세계로 돌아오는 주인공들은 현실과 신화가 공존하는 룬드베리 세계관의 안내자들입니다. 독자는 그들과 함께 감각을 되찾고, 두려움 없이 길을 잃으며, 경이로운 깨달음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고양이 산책』(어린이작가정신, 2024)은 산책이라는 일상의 행위를 통해 통제와 직관, 문명과 야생, 나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재구성하는 철학적 이야기입니다. 2부로 구성된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길을 잃는 것의 미학, 관계의 윤리, 타자를 따름으로써 이루어지는 자아의 재발견이라는 다층적 메시지가 간결한 언어와 감각적 색채로 펼쳐집니다.
고양이와 함께 매일 같은 길을 걷던 인간은, 어느 날 고양이에게 “왜 항상 네가 다 결정해?”라는 질문을 듣습니다. 이 한마디로 인간 중심의 질서는 무너지고 감각과 직관, 우연과 깨달음이 공존하는 세계가 열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부에서 인간은 고양이를 따라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길을 잃고, 마침내 문명의 언어가 무력해지는 벼랑 끝에 섭니다. 그 벼랑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은 이 책의 정점이자, 존재의 전환점입니다. 그리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은 길을 잃은 자만이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자, 감각의 부활에 대한 선언입니다.
룬드베리의 그림은 이러한 전환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문명의 질서가 지배하는 1부는 깔끔한 구획과 높은 채도의 색채로 표현되고, 2부는 혼란스러운 구도가 무겁고 어두운 색채로 펼쳐집니다. 후자는 고양이가 이끄는 비선형적 산책의 리듬과 정확히 닮아 있으며, 시각을 넘어 촉각과 청각, 심지어 후각까지 자극하면서 독자를 위험한 산책에 끌어들입니다.
이 책은 타자의 리듬을 받아들이고, 삶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써 잊고 있던 감각을 회복하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인간은 말합니다. “내일은 평소에 다니던 길로 산책 가자?” “하지만 모레는 또 길을 잃을 수도 있어!”라고요. 익숙함을 유지하면서도 타자의 리듬을 받아들이는 이러한 열린 태도는 사라 룬드베리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로 보입니다.
『오로지 나만』(봄볕, 2024)은 성장 서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자율의 회복, 관계의 재구성, 존재에 대한 사유가 정교하게 얽혀있습니다. 이야기는 출발-모험-귀환이라는 전형적인 성장 서사의 구조를 따르되, 룬드베리는 이를 감정의 흐름과 인식의 변화라는 내적 여정으로 전환합니다.
사건은 아이가 1인용 물놀이 보트의 매듭을 푸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매듭은 보호, 결속, 고정된 정체성을 상징하며, 이를 푸는 행위는 일상의 질서와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내면의 열망을 의미합니다. 아이는 이 행위를 통해 ‘누군가에게 예속된’ 존재가 아닌 ‘오직 나만의 결정’으로 존재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요정 같은 세 명의 아이들은 주인공의 내면적 성장과 상상력의 확장을 상징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들은 주인공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조용한 안내자이자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룬드베리는 텍스트 없이 오로지 시각 언어로만 이 여정을 풀어냅니다. 빛의 산란, 도시를 무심히 관통하는 운하,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 의미 있는 만남, 추락과 구조, 그리고 귀환까지, 이 모든 장면은 독자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주체적인 해석을 유도합니다.
익숙한 세계로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씨앗이 쥐어져 있습니다. 씨앗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 피어날 가능성의 은유입니다. 작품의 주요한 두 개의 상징인 ‘매듭’과 ‘씨앗’은 이야기의 주제를 완성하면서 독자에게 조용히 질문을 건넵니다.
라고 말입니다. 『오로지 나만』은 아이를 위한 성장 이야기인 동시에, 존재를 다시 묻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사유의 여정입니다.
김난령_번역가, 그림책 연구가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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