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는 그림책 공간 - 안녕고래야
책방을 하기 전에 나는 책을 아주 많이 읽는 편도 아니었고, 어려운 책을 술술 읽어내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감동’ 받으면 며칠은 그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쩔쩔맸고, 특별히 와닿지 않는 책이라도 며칠은 그 책의 내용을 문득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혼자 하는 이 생각과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에 조금은 허전해했다.
책방을 하고 나니 그 허전하던 마음이 채워져서 제일 좋았다.
재밌는 책 추천해주세요
하는 손님의 말에 내가 아는 최선의 문장들을 활용해보지만 그걸로 부족하다 싶을 때는 다짜고짜 그림책을 펼쳐 들고 읽어드리기도 한다. 아마 그렇게 그림책을 사 들고 간 손님들 중 몇 분은 책의 내용이나 그림이 아주 맘에 들어서라기보다, 그때의 내 모습에서 ‘기꺼이 즐거운’ 태도를 읽었기 때문일 거다.
사실 혼자라면 열지 못했을 책방이다. 우리는, 그러니까 ‘안녕고래야’의 책방지기는 두 명이다.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데 가끔 오시는 손님들은 동일한 사람으로 오해하시곤 하는 우리는 30년 지기 친구다. (‘30년’이란 시간을 글로 쓰고 보니 남의 얘기 같은데, 우리 얘기라니, 세상에!) 각자의 자리에서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참 많은 얘기를 나누고 의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래 어쩌다가 그렇게 마음이 맞았는지 모를 일이다. 책방으로 쓸 공간을 계약하고 꾸미고 오픈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벤트들이야 『천일야화』에 버금가는 스케일이지만, 더 이상 그런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졌다. ‘오늘도 내일도 책방의 문을 여는 일’ 그것 말고 지금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코로나19와 도서정가제에 심지어 미니멀리즘까지. 책을 ‘파는’ 우리에겐 사방이 적이지만, 마냥 잡아먹히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책이란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코로나 시대는 기회다. 언택트 시대에 디지털기기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들만으로도 우리의 시간은 넘치게 채워지겠지만, “인간은 감각하는 동물이고, 앞으로도 죽 온몸으로 감각하는 동물로 살 것”(정은혜, 『싸움의 기술』, 샨티)이기 때문에 분명 인터넷이나 SNS만으로는 필연적으로 허전함이 남는다. 그때에 책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책방을 해본 사람은 동의할 텐데, 책방에는 책을 보(사)러 오는 분들도 있지만 그냥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 오는 분들도 종종 있다.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이 책이기도 하지만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림책은 특히나 더 감각으로 느껴야 하는 책이다. 아이들은 그림책의 내용보다도 그림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목소리와 체온, 눈빛에서 더 따뜻하고 깊은 생각들을 읽어내고 체화한다. 책방 한가운데에 서서 열정적으로 그림책을 읽어주던 책방지기 덕분에 왠지 그림책이 더 예뻐 보였을 그 손님처럼. 만약 온라인 수업으로 친구들과의 대면이 줄어들고 아이의 학력 저하까지 우려된다면, 그것 또한 그림책이 도와줄 수 있다. 한글을 다 배우지 않았더라도 ‘그림’이 있으니 괜찮다. 글이 짧으니 누군가 ‘읽어줄 수 있어서’ 더 괜찮다. 조근조근 잘 들리게 읽어주려면 옆에 바짝 앉아 체온의 따뜻함부터 나눌 수 있어야 하며, 0세부터 100세까지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라 때로는 읽어주는 어른이 먼저 눈물을 찔끔할 수도 있다.
요즘은 한산한 책방이지만 매달 한 번은 바쁠 때가 있다. 안녕고래야에 구독 서비스를 신청하신 분들을 위해 매달(혹은 두 달에 한 번) 세 권씩 책을 골라 보내드리기 때문이다. 택배비는 따로 없이 정가로 책값을 받는데, 어떤 분은 받고 싶은 책을 미리 말해주기도 한다. 그럴 땐 오히려 내가 손님으로부터 책을 소개받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감사하다. 대형서점처럼 굿즈를 보내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인을 해드릴 수도 없다. 다만 세 권의 책을 추천하는 이유와 안부를 전하는 편지 한 통을 정성스럽게 쓰는 일이 최선이다. 이 고마운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셨을까, 해가 바뀌고 한 살 더 먹었을 어린 구독자들의 집콕 생활은 어떨까 상상하는 일은 책방을 하면서 하는 일 중에 가장 어려우면서도 보람 있다. 그리고 책방에 손님들이 찾아올 수 없는 요즘 같은 때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내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사기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남이 고른 책을 세 권씩이나 꾸준히 산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주시는 구독자분들이 계시니, 코로나19 따위에 지지 말아야지 싶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손님들이 책방에 올 수 있게 되면 기나긴 집콕 생활 동안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책이 나에게 최고의 책이었는지 ‘책 자랑’ 모임을 하고 싶다. 아이들은 얼마나 컸고 어떻게 지냈으며, 그동안 못 누렸던 일상들 중에 아이들과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인지 ‘일상 회복 프로젝트’를 나누고 싶다. 아니, 일단은 코로나19가 끝났으니 기쁨에 겨운 파티를 제일 먼저 열며, 오늘을 기념할 그림책들을 ‘한 권씩 사는’ 행사를 열어야겠다. 안녕고래야는 ‘사심’이 가득한 책방이니까.
• 경남 양산시 물금읍 백호2길 7-7
• 010-2968-8321
조여경_책방 안녕고래야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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