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히 글·그림 / 56쪽 / 16,000원 / 한림출판사
제목이 참 예쁜 이 그림책을 펼치면 맨 먼저, 어린 소녀가 봉숭아꽃같이 빨간 가방을 메고, 봉숭아꽃 가득한 길을 걷는 모습이 보인다. ‘누구일까? 이 소녀는?’ 궁금증을 간직한 채 한 장을 더 넘기면 작가 소개 아래 조용히 자리한 그림책의 헌정사가 보인다.
엄마라는 단어와 ‘여전히’라는 단어는 참 어울린다. 엄마는 여전히 자식 걱정뿐이고, 엄마는 여전히 어디도 아프지 않은 척 씩씩하게 모든 일을 해낸다. 엄마는 여전히 하늘나라에서도 자식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림책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할머니, 엄마, 그리고 정우. 두 명의 엄마가 있지만 할머니가 주인공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속표지에 소개된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정우, 정우 엄마 송이, 할머니의 이름 선아다. 반짝반짝 빛나는 봉선아.
볼이 늘 빨개서 별명이 봉숭아였던 아이 봉선아는 놀리는 친구들에게 그만하라고 호통을 칠만큼 씩씩한 아이였다. 하지만 결혼해서 조금 다른 삶을 산다. 남편은 온종일 일하느라 밖에 있고, 딸 송이는 껌딱지라 조금만 떨어져도 울고불고 난리다. 선아는 이 지난한 독박 육아의 시간을 오롯이 견뎌내며 남편 뒷바라지까지 훌륭히 해낸다.
딸이 아이를 낳자 엄마 봉선아의 육아는 다시 이어진다. 피곤해서 쓰러진 남편을 위해 한밤중 우는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갔던 것처럼, 딸의 잠을 깨울까 봐 우는 아이를 업고 자장자장 달랜다. 밥 잘 안 먹었던 딸에게 밥을 먹이듯, 정성을 다해 손주의 밥을 먹이고, 퇴근한 딸을 위해 구수한 밥 냄새가 나는 밥을 짓는다. 설거지와 걸레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딸의 일이라면 뭐든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이다. 엄마와 딸은 이렇게 시간을 쌓는다. 그 시간 속에는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로의 공감이 들어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에 대한 사랑이 가득 들어있다.
선아 할머니는 정우와의 시간도 쌓는다. 가방 가득 담아온 맛있는 것들을 꺼내 정우의 탄성을 자아내고, 정우와 엄마 송이의 어릴 적 이야기도 나눈다. 놀이터에 나가 함께 그네도 타고, 들꽃을 보며 꽃이름을 알려주기도 한다. 할머니는 정우에게 ‘좋아하면 잘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중한 것은 뭐든 알게 되고 기억하게 된다. 정우는 할머니를 좋아하니까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 반짝반짝하는 시간과 반짝반짝하는 할머니 봉선아 씨를. 그림책의 뒤 면지에는 달빛이 된 선아 할머니가 반짝반짝 빛나며 정우와 엄마를 비춘다.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으레 눈물을 부른다. 그런데 『반짝반짝 봉선아』는 그저 나와 같은 선아가, 나와 같은 송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겐 나와 같은 정우가 있을 것이다.
최혜정_도담도담 그림책 숲 대표, 『어른의 삶으로 그림책을 읽다』 공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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