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옌 지음 / 문현선 옮김 / 332쪽 / 18,800원 / 윌북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혹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뛰어난 세정력을 자랑하는 청소 세제를 보거나, 굳이 배고프지도 않은데 갑자기 식욕을 잡아당기는 간식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쇼핑 앱에 접속해 홀린 듯이 주문을 클릭한다. 그러면 하루이틀 안에 우리 집 앞으로 택배 상자가 도착한다. 가족을 제외하고 우리 집에 가장 자주 찾아오는 사람이 택배기사다. 택배로 인한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고 무분별한 소비를 자제할 필요가 있어 하루 만에 도착하는 쇼핑 사이트 앱을 삭제도 해봤지만, 결국 다른 쇼핑몰로 대체될 뿐이었다. 택배는 그렇게 우리 삶에 깊숙이 침범해 있다.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는 제목 그대로 택배기사의 일을 조명한다. 북경에서 여러 곳의 택배사에서 일을 한 저자는 중국의 택배 시스템을 솔직하게 공개한다. 우리는 그렇게 택배를 빈번하게 시키면서도 물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택배기사의 노동 보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와 땅 크기가 다르기에 시스템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사람이 보내고 사람이 이동해 물건을 전달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
가장 앞에 내세우는 건 택배기사지만, 이 글은 저자가 20년간 경험한 직업 고백이다. 택배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해고가 되고 편의점, 주유소, 자전거 회사를 거쳐 만화 해적판을 만드는 잡지사에서 일하고 쇼핑몰 사업으로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맛보기도 한다.
저자가 온라인상에 올린 글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화제가 되면서 이 책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 바탕에는 저자가 자신의 민낯을 과감히 까발린 솔직함이 통하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살라는 부모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지만 여러 일들을 경험하면서 겸손하고 정직한 성격이 돈을 버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는 그 과정에서 소수자를 외면하고 동료의 부도덕함을 눈감아 주고 자신의 민낯을 보면서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히기도 한다. 그 솔직한 자기 고백은 글을 읽는 사람의 민낯도 들여다보게 만든다.
생애 주기가 길어진 요즘은 제1의 직업도 아닌 2, 3의 직업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을 그만하고 싶어도 삶이 지속하는 한 일도 계속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 일의 가치를 찾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 이외의 삶과 자유를 찾는 게 필요하다는 걸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를 보고 배운다.
남우정 기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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