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 히데코 글·그림 / 황진희 옮김 / 48쪽 / 15,000원 / 천개의바람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아마 「캐논」이라는 연주곡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곡 제목은 몰라도 들으면 “아~ 이 음악이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고요. 「캐논」이 이토록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 음악을 들으면 뭔가 아련한 마음과 함께 괜히 울고 싶어지거든요. 그리고 울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져요. 여러분은 「캐논」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이 그림책은 맑고 섬세한 수채화로 유명한 일본의 그림책작가 이세 히데코의 신작입니다. 지난 그림책들 속에서도 음악이 가진 위로와 치유의 힘을 잘 보여줬던 이세 히데코, 이번에는 ‘첼로’가 아닌 ‘피아노’를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세 히데코의 그림이 맑고 투명한 피아노 선율과 무척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엄마와 단둘이 사는 아이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집 바로 옆은 마치 숲처럼 보였는데, 숲이 아니라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정원이라고 했어요. 엄마가 출근하고 집에 홀로 남은 아이는 심심한 마음에 아직 풀지 않은 이삿짐 상자들을 살폈습니다. 그러다가 다섯 살 생일 때 아빠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피아노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아빠와 함께 이 장난감 피아노로 「캐논」을 연주하곤 했었는데, 아빠가 안 계시고 나서는 ‘라’ 건반에 소리가 나지 않아 점차 치지 않게 되었던 추억의 물건이지요. 오랜만에 다시 장난감 피아노로 「캐논」을 연주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이의 「캐논」 연주에 맞춰 그 피아노도 똑같이 「캐논」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소리가 나는 곳은 집 옆의 그 숲이었습니다.
흔히 상실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그저 시간이 흐른다고 마음속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그러기에 모든 아픔에는 제대로 치유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일 수도 있고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음악이나 예술이 그런 치유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위로가 필요한 날 찾아 들을 수 있는 노래 한 곡이 있다는 것, 그림책 한 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그것이 바로 우리 삶에 음악과 예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저도 이 그림책 덕분에 한동안은 「캐논」에 푹 빠져 지내게 될 것 같네요.
이혜미_그림책방 근근넝넝 대표,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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