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지음 / 448쪽 / 18,500원 / 사계절
이금이 작가의 소설 『슬픔의 틈새』는 일제강점기의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잇는 작품이다.
작가가 소설 제목을 ‘슬픔의 틈새’로 지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틈새는 어떤 물체 사이에 벌어진 작은 공간이다. 어떤 물체는 기존에 세워진 건물, 또는 질서일 수 있다. 오랫동안 구축되어 굳건히 존재하는 무엇이다. 그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또는 절대로 변할 수 없다. 그래서 그사이에 있는 틈에는 질서에 포함될 수 없는 존재들이 기거한다. 기존 질서의 폭력적인 구분으로 내쳐진 존재들의 공간이다. 틈새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틈새는 기존 질서보다 더 큰 공간일 수 있다. 기존 질서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높은 차단막으로 재단된 곳이기에, 오히려 그 질서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은 기존 질서보다 더 깊고 넓다.
이 소설은 기존 질서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이름이 ‘주단옥’ ‘야케모토 타마코’ ‘올가 송’으로 변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이고, 나를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소리다. 즉,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통째로 세 번 바꾼 것이다. 일본의 식민 지배, 소련의 점령, 한국전쟁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미약한 개인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기존 질서에 쉽게 포함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해있던 곳을 떠난 사람의 운명이기도 하다. 특히나 역사의 격변기에는 더욱 그렇다. 혼란스러운 역사는 기존 질서를 흔들고 그 흔들림에 튕겨 나간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차별하고 가혹하다. 여성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인간은 내쳐진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고 자신만의 삶을 가꾼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일본이 패망 후에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척박한 사할린에서 수십 년간 무국적자로 살아야 했던 고단하지만 강인했던 한인의 생생한 기록인 것이다.
이미 지나간 슬픈 역사의 이야기지만, 『슬픔의 틈새』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소중한 질문을 던진다. 국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큰 물음뿐만 아니라 여전히 기존 질서의 틈에서 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슬픔의 틈새』는 단순한 역사 소설, 또는 국가를 잃어버린 삶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묻는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다.
우리는 주인공을 통해서 소외되고 잊힌 존재들의 공간, 슬픔의 틈새에 사는 또 다른 주단옥, 타마코, 올가 송을 내치거나 배척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기존 질서가 만들어낸 슬픔의 틈새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간절하게 자신의 삶을 지켜낸 주단옥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강성훈_서점 카프카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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