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와 함께 힘차게 헤매기

한국 그림책작가의 세계 - 오소리

by 행복한독서

춘천에 사는 오소리 작가와의 인터뷰 약속을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날리게 되었다. 또 서울로 나오라고 할 면목이 없었던 내가 춘천으로 향했다. 노를 휘둘러 홈런을 치는 투사를 예상했던 나는 개츠비의 첫사랑 데이지 같은 그녀의 인상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자리 잡고 앉은 식당에서, 닭갈비는 유난히 냄새가 나니 옷과 가방을 담으라며 비닐 봉투를 내미는 데서 또 놀랐다. 그 엽렵함과, 김장김치용일 듯한 대형 비닐 봉투의 스케일에. 오소리는 책도, 작가 자신도, ‘두 가지 상반된’이라는 인상을 내가 만난 중 가장 강력하게 주는 작가였다. 그의 책들에는 무겁고 두터우며 강렬한 색과 선, 힘찬 붓질의 근육질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귀엽고 다정하며 섬세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도 공존한다. 무엇이 이 작가에게 이런 극적인 대비를 주는 걸까? 나는 그 점이 궁금했다.

그림7-노를 든 신부.png ⓒ이야기꽃(『노를 든 신부』)

오소리가 첫 책 『노를 든 신부』로 독자에게 심어준 인상은 거침없고, 거칠고, 자유롭게 나아가는 질풍 같은 것이었다. 럭비선수 같은 어깨에 길게 끌리는 흰 웨딩드레스 자락, 휘날리는 긴 흑발의 여자가 자기 키보다 더 큰 노를 들고 어둡게 붉고 푸른 깊은 숲속을 최대한의 보폭으로 걷는 이미지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우리 그림책에서 본 적 없던 캐릭터인 ‘노를 든 신부’는 젊은 여성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그 책은 어떤 절박함에서 나왔어요. 책을 만들지 않으면 일을 또 해야 하는구나”

하고 작가는 말했다. 공장에서 디스플레이 패널 나사를 조립하는 일은 ‘다채로운 체험’이기는 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어딘가 다른 곳, 얽매이지 않는 곳, 들끓는 자신을 분출시킬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정체성과 가능성을 찾아 회오리처럼 돌아치는 젊은 여성의 표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오소리 책의 캐릭터들은 어디론가 떠나는 이미지를 가장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시선 너머』의 표지는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작은 곰을 보여준다. 곰의 등은 망연해 보이지만, 아래로 펼쳐지는 거대한 강은 곰이 곧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함을 암시한다. 과연 작은 곰은 괴나리봇짐을 어깨에 멘 채, 예의 그 최대한의 보폭으로 숲을 향해 들어간다. 『엉엉엉』의 곰쥐는 자기 내면을 찾아 과거로 파고들어 가는 여행을 한다. 표지에서는 돌들이 무더기가 되기 위해 쌓이는 것처럼 보이는 『돌머리들』에서도, 돌을 껴안은 ‘돌머리’가 비웃음 소리를 뒤로한 채 단호히 걸음을 옮기는 장면이 결말이다.

그림7-돌머리들 벽화.png ⓒ이야기꽃(『돌머리들』)

이들은 무엇을 찾으러 어디로 가는 걸까? 노를 든 신부는 그저 ‘모험을 떠나’기로 한 것이고, 곰쥐는 ‘난 내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떠날’ 거라고 선언한다. 이 두 진술이 오소리 작품의 키포인트로 보인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모험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내게는, 그는 자기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아직 잘 모르고 있으며, 어디에 가서 무엇을 찾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도 잘 모른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너무나 광대하게 열려있는 가능성 앞에서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중으로 보인다. ‘선택’도 이 작가에게는 중요한 키워드다. 인터뷰 중 “주어지는 것보다는 선택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여기거든요”라는 말로 스치듯 흘렸지만, 『시선 너머』 가운데 부모의 싸움으로 세상이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던 어린 곰의 “이 모든 건 제 탓일까요? 저는 누구를 선택해야 했을까요?”에서는 단호한 못질이 보이는 듯하다.


주어진 것을 거부하고 선택을 향해 모험을 떠나는 작가의 자세는, 주어진 기질일 것이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들과 소통이 어려웠고, 초등학교 때는 ADHD 판정을 받을 만큼 틀 밖으로 튀어 다녔다. ‘성적은 바닥’이었다. 그는 모든 텍스트, 글자뿐 아니라 주변 상황 모두를 주어진 대로 읽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 읽었다고 한다. 기존의 해석을 거부한 건 아니었다. 기존의 해석이라는 것 자체가 머리에 없었다. 자유롭게 자기 방식대로 읽고 말하자니 당연히 소통의 통로는 좁고 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모든 게 다 싸움’이었고, 사고방식은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아, 이제 조금 이해가 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부정형(不定形)이었고, 그래서 스스로 형태와 의미를 찾아 나서야 했다. ‘노를 든 신부’가 되어 필사적으로 싸워야 했다. 유치원 때 친구의 얼굴을 할퀴어 생채기를 냈다고 하지만, 자기 마음에는 더 깊은 생채기가 파였을 것이다. 그 친구를 초등학교 때 만났는데, 흉터 남은 얼굴로 자기에게 밝게 웃어 보이던 모습이 놀라웠다고 작가는 말한다. 마음이 환해지고 따뜻해졌을 것이다. 아마도 그가 찾아 나선 것은 그 웃는 얼굴 같은 빛이 아닐까. 마음속 어린 자기의 ‘엉엉엉’ 울음을 그치게 해줄 힘을 갖춘 자기 자신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그는 일반적인 ‘시선 너머’의 깊은 마음, 넓은 세상, 길이 없는 빽빽한 숲속을 헤매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그림책상 특별상을 받은 『건축물의 기억』에서 그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는 남자의 압도적인 몸을 보여준다. 죽음의 욕조를 상징하는 검은 사각형 틀 안에 남자의 커다란 몸이 잔뜩 구겨 넣어져 있다. 그는 극도의 고통과 공포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과 공포에 지지 않는, 맞서 싸우는 힘을 남자는 온몸으로 폭발시키고 있다. 파랑, 노랑, 보라, 분홍의 강렬한 색깔들이 생명을 쏘아 올리는 듯하고, 팔과 손과 다리 위로 길고 가늘게 지나가는 흰색은 한 줄기 빛과 같다. 이 작가는 그렇게 붓을 들고, 죽음의 고통과 공포 너머, 엉엉 울음을 잠재우며, 빛을 향해 큰 걸음을 떼어놓고 있다. 『돌머리들』의 마지막 장면처럼 사랑스럽게. 그 장면의 텍스트는 “보물 하나가 보물을 들고 간다”이다. 우리도 이 보물 같은 작가를 들고 가자. 눈물 대신 콧물 한 방울쯤 흘려가면서.


김서정_작가, 평론가, 『어린이 책 번역이 쉽다고?』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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