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새롭게 빚은 한국만의 겨울 문화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155

by 행복한독서

우리 누리 크리스마스

연수 글·그림 / 54쪽 / 19,800원 / 위즈덤하우스



겨울이 오면 우리는 자연스레 서양의 명절,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하나둘씩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트리볼과 전구, 산타 양말 등으로 트리를 꾸미곤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크리스마스트리를 조금은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적이 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낯설지만 또 정감이 가는 그 사이에서 작은 상상들이 피어났고 그렇게 『우리 누리 크리스마스』가 시작되었다.


이 책의 계기는 정말 우연한 순간에 다가왔다. 2022년 11월, 강원도 낙산사를 오르던 중 나무들 사이로 바람에 흔들리던 연등과 묵주, 소망이 적힌 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종교와 상관없이 문득 ‘아… 한국의 트리라면 이런 모습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수많은 상상이 떠올랐다. 빨간 산타 양말은 버선으로, 반짝이는 트리볼은 연등과 바늘방석, 촛대로 바뀐 그 장면들은 상상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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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야기를 만들 때는 아이들이 ‘왜’ 이 트리를 만들게 될까, ‘동기’에 대해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가 가진 ‘기적’과 ‘소원’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트리를 우리 무속에서 말하는 당나무나 수호 나무 같은 존재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첫 더미는 1952년 12월, 전쟁이 끝나가던 시골 마을의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서 완성된 트리는 전쟁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 정작 전하고 싶었던 ‘한국적인 트리의 아름다움’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출판사들에게서 반려 소식을 들었지만, 오히려 이 책을 꼭 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선명해졌다. 결국 오래 쌓았던 작업을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오래 고민한 것은 ‘어떤 시대여야 할까’였다. 아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여전히 낯설되, 동시에 서양 문화를 어렴풋이 엿볼 수 있는 시기여야 했다. 유럽과 북미에서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미지가 자리 잡던 1800년대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한국의 1830~1850년대가 마음에 들어왔다. 문화가 활발했고, 주변 나라를 통해 서양의 물건과 소식이 드나들던 때다. ‘이 정도라면 아이들이 상상할 여지가 충분하다’라는 확신이 생겨 새 더미의 배경을 1830년대로 설정하고 더 많은 상상과 유머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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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림책의 페이지가 조금 더 천천히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면 곳곳에 작은 즐길 거리도 숨겨두었다. 동양의 신데렐라, 십이지신, 우렁각시 같은 익숙한 존재들이 잠시 얼굴을 내밀며 이야기에 작은 숨결을 넣는다. 아이들은 이런 장면을 발견할 때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가 보이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한 번 더’ 펼쳐보고 싶은 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반면에 역사적 고증도 완전히 떼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 시대에 있었던 풍경들, 그때 사용되었을 법한 물건들로 배경을 채우다 보니 자연스레 볼거리가 많아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혹시 너무 역사 그림책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스쳤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상상을 품은 세계여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 경계를 부드럽게 넘어가게 해줄 존재로 ‘곰 도령’을 만들었다. 상단 아이, 동자승, 아씨, 숙수처럼 실제 시대에 있었을 아이들 사이에서 곰 도령은 조용히 말해준다. ‘여긴 현실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이다’라고. 머리 위에 올려둔 작은 마늘은 단군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장난기 어린 장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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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 곳곳에서 K-문화가 사랑받는 이때, 모두가 아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우리 문화로 꾸민다면 어떨까. 『우리 누리 크리스마스』는 한국이 오랫동안 잘해온 ‘새롭게 빚어내기’ ‘다시 조합해 새로운 결을 만들어내기’를 자연스럽게 담은 책이라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분명 낯설었겠지만, 이 책 속 아이들은 그 낯섦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익숙한 일상과 전통을 더해 자신들만의 ‘한국형 크리스마스’를 만들어낸다.


세계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정서에 머물러있는 지금, 이 그림책은 크리스마스라는 보편적인 문화에 한국의 따뜻한 미감과 감성을 잇는다. 언젠가 이 이야기가 ‘K-Winter Christmas Story’로 확장되어, #KChristmas #KoreanChristmas라는 흐름 속에서 한국만의 겨울 문화를 소개하는 시작이 되길 기대한다.


연수_그림책작가, 『우리 누리 크리스마스』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6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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