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지음 / 260쪽 / 17,000원 / 교양인
『민달팽이 분투기』를 읽으며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프랑스의 스테판 에셀이 청년들에게 남긴 말 “분노하라” “참여하라”가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 지수 활동가는 ‘민달팽이’들과 현장에서 함께 분노하며,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주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세입자, 특히 청년들이 보증금을 떼이지 않는 안전한 집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 책은 생생하게 담아냈다. 세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거나 깊이 공감할 이야기들이다.
모든 불안을 세입자가 떠안는 한국 사회에서 세입자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일과 같다.
지수 활동가는 청년들과 함께 가짜 공인중개사와 악덕 임대인을 찾아가 싸우고, 민달팽이들에게 안전한 집을 구하는 14개 꿀팁을 주며, 함께 ‘주거권’을 외치고, 집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해보자고 손을 내민다. 나는 지수 활동가와 전세사기 피해가 크게 드러나기 전부터 함께 세입자 운동을 해왔다. 그 오랜 경험이 이 책 곳곳에 공기처럼 스며있다. 세입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민달팽이를 구하는 14개 질문’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세입자라면 꼭 한 번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국회 앞 천막 농성, 기자회견, 1인 시위, 집회, 토론회, 기자설명회를 하며 싸워왔던 수많은 장면과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시민사회가 피해자들에게 가장 먼저 건넨 말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였다. 전세사기는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사회적 재난이다. 전세사기특별법이 제·개정되었고, 일부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전액 회수했지만 여전히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
집값이 폭등하면 전·월세가 뒤따라 오르게 된다. 주택 가격 안정은 곧 세입자 주거 안정과 직결된다. 공공이 보유한 공공주택이 늘어나면 가격 상승을 완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주거단체들은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요구해 왔다. 2023년 10월부터 69일간 국회 앞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저지를 위한 천막 농성을 함께했었다. 여전히 공공임대주택 확대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모두를 위한 공공임대, 누구나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은 과연 언제 가능해질까. 이 책은 조급한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탄핵 이후 1년,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세입자들을 위한 정책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강남의 30억 원이 넘는 아파트의 보유세가 월 1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데도 보유세 폭탄이란 제목을 달고 보유세 부담이 커진다는 언론 기사가 쏟아진다. 반면 어른 두 명이 눕기도 어려운 원룸 월세가 월 100만 원이 넘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세입자들의 현실은 안중에도 없다. 지금 정부와 국회, 언론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박효주_참여연대 주거조세팀 팀장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6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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