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틔우는 책방
돌 틈으로 고개 내민 작은 풀을 본 적 있으신가요? 한 줌의 흙과 햇빛, 물과 바람에도 제 안의 생명력을 발휘하여 뿌리 내리고 싹을 틔운 풀들에 ‘틈싹’이라 이름 붙였어요. 서울살이를 접고 지역에서 작은 책방을 열기로 했을 때, 여러 후보들을 돌고 돌아 정착한 이름도 ‘틈싹’이에요. 공고한 세상의 틈에서 함께 지켜가고픈 이야기를 싹틔우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틈싹은 2024년, 공주 원도심의 점차 쇠락해 가는 대로변 한가운데서 싹을 틔웠습니다. 틈싹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습니다. 테이블은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책상이 되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는 식탁이 되기도 합니다. 책방과 식당을 섞어놓은 정체불명의 느낌이 바로 틈싹의 정체성이에요.
틈싹에서 주목하는 점은 소비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어져 버린 연결 감각을 회복하는 거예요. 그 안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도 포함되어 있고요. 연결의 매개체로 가장 중요한 것이 ‘책’이었어요. 정확히는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이야기 공동체’예요. 오랫동안 책모임에 참여하거나 책모임을 만들어간 경험이 제 삶의 경로를 조금씩 바꿔왔어요. 책읽기 모임에서 끝나지 않고 구성원들과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이어가고 싶었고요. 책 외에 실천적인 매개체가 하나 더 필요했는데 제가 떠올린 것은 ‘식사’예요. 비건 요리를 만들어서 함께 먹는 과정은 많은 연결감을 선사해요. 틈싹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경험을 했던 분들은 이걸 알아차려요. 책과 식사가 어우러지면서 빛을 발하는 것을 느꼈는데, 그 본체는 ‘따뜻함’이었어요.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른 다양한 공존 양식이 결합되면서 온기를 채워준 거죠.
처음 구상했던 책방은 다양한 책모임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곳이었어요. 구례를 시작으로 순창, 광주, 대전 등을 돌아다니던 중 공주 제민천 마을을 발견했어요. 오랫동안 사람들이 잘 가꿔온 골목,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된 덕에 높은 건물이 없어 탁 트인 하늘, 마을을 가로질러 금강 본류까지 이어지는 제민천 산책길까지, 모든 요소들이 책을 중심으로 한 마을공동체에 잘 어울렸어요. 작은 마을 안에 이미 여러 책방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집중하기로 했어요. 인근 학교에서 잠깐 시간강사로 일했는데, 학생들이 제가 비건임을 알고 많이 궁금해했어요. 비건에 대해 알고 싶은데 공주에서는 마땅한 곳이 없다며 아쉬워했고요. 처음으로 제게는 익숙하지만 이 지역에는 생소한 것, 저의 역할이 보였어요. 제민천 마을로의 이주를 결심한 것도 비건으로 살면서 변화한 제 삶과 이곳의 풍경, 리듬이 잘 맞았기 때문이니 저와 공주의 연결점으로 ‘비건’을 떠올린 것은 필연일 수도 있겠네요.
책에 식사가 결합되면서 틈싹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저 또한 오랫동안 머리로만 이해하고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 손과 발을 움직이며 누군가를 돌보는 감각을 미숙하게나마 배워가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책방에서 나누고자 했던 ‘돌봄’ ‘공동체’라는 주제에 힘이 실리게 되었어요. 틈싹을 찾는 분들과 교류하면서 저도, 틈싹도 점점 새로워지는 걸 느껴요. 느리지만 묵묵히 작은 이야기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공간에서 꼭 지켜가고픈 것들도 생겼습니다. 새로운 계절을 맞을 때마다 인상 깊게 읽은 책을 바탕으로 계절 내내 여는 이야기 모임인 ‘틈싹 이야기클럽’, 그리고 책 속 이야기를 담아서 만든 비건 요리와 계절 블렌딩 허브티, 짤막한 글과 함께 제공하는 계절 밥상 ‘틈싹스페셜’은 저에게도, 손님들에게도 계절 의식이 되었어요. 바쁜 일상에도 틈을 내어 계절에 한 번씩은 공간을 찾아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분들이 조금씩 늘고 있거든요. 지난가을에는 책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 『화씨 451』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엮어서 ‘돌봄의 읽기로의 초대’라는 주제로 저자인 전병근 지식큐레이터의 북토크를 비롯해 책모임과 영화 상영회를 열었고, 책과 영화의 이야기들을 담아 뿌리채소 플레이트 밥상을 차려냈어요. 겨울 이야기의 씨앗은 고 김민기의 노래 「봉우리」이고, 여기서 뻗어나간 생각을 담은 겨울 밥상은 1월부터 제공될 예정이에요.
지난여름부터 시작한 ‘한 달 한 권, 기후책 읽기’ 모임은 기후책에서 시작했지만 기후 문제의 근본 원인인 ‘관계망 회복’으로 주제를 발전시킬 예정입니다. 이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가 제민천 마을을 생태적으로 가꾸는 데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근 책방들에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모임을 제안했는데 감사히도 여러 책방들의 화답으로 봄부터 크고 작은 모임과 행사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책방들의 이야기를 담아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모임의 구심점도 생겼답니다.
틈싹을 운영하면서 저 또한 ‘책방은 이래야 한다’라는 편견을 하나씩 깨고 있습니다. 책방에서는 책만 다뤄야 한다, 책방은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말들이 책과 책방이 처한 상황, 마을 문화 등과 조우하면서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틀 하나를 깰 때마다 처음 심고자 했던 씨앗의 본질을 떠올립니다. 그건 좋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연결감을 회복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삶에서 가장 큰 갈증을 느꼈던 지점이기도 합니다. 자연히 공간의 중심을 잡아가는 일이 삶의 지향과 태도를 지켜가는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체성이라는 말에 갇히지 않되, 책으로 싹틔우고자 했던 본질을 지켜가는 일, 그 사이에서 좌충우돌 균형 잡는 일이 앞으로 틈싹의 행보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여정에 공감하고 함께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난다면, 그렇게 연결된 ‘틈싹연대’는 나홀로 피어있을 때보다 더 깊고 따뜻한 이야기를 틔울 수 있을 것입니다.
주소 : 충남 공주시 웅진로 153 1층
운영 시간 : 수~금 17~22시, 토·일 12시 30분~20시(월, 화 휴무, 모임 및 행사 월간 일정표 확인)
인스타그램 : @teumssag
이보영_책방 틈싹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6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